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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수목사 칼럼) 생활 속 지혜 '간섭'

(아시아뉴스통신= 장인경기자) 기사입력 : 2016년 12월 23일 14시 11분

장동수 목사.(사진제공=성림감리교회)

간섭(干涉)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관계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종 자녀들이 부모의 잔소리가 싫어서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가 자녀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간섭일까요? 아니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있으며 게다가 남도 아니니 간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이지만 지나치면 간섭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또한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기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실제 나와 친척도 이웃도 아니지만 알지도 못하는 어떤 어른이 혼을 내면 그 혼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자코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라는 말보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의 선생님을 흉보고 비판하는 부모님들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점점 더 많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 이후 선생님의 훈계와 어른들의 애정 어린 관심은 더 이상 훈계와 관심이 아니라 부당한 간섭이라고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강대국의 힘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옷을 벗어라, 입어도 된다’라며 법을 정해 명령하는 것은 부당한 참견입니다. 일명 ‘갑질’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부당한 압력은 아닐지라도 쓸데없는 간섭으로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오지랖 넓다’고 말하죠.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기와 관계도 없는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입니다. 장기를 두는 자리에서 훈수를 두는 것 까지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지랖이 넓은 것이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신경을 쓰고 결국 그 일에 휘말려 자기가 가던 길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나가다가 남의 다툼에 상관하는 것은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잠언26:17)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서로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중국어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하다’라는 의미의 ‘웨이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죽어가도 모여 구경할 뿐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실제 중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몰래 녹화했는데 구경만 할 뿐 아무도 상관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좀비(주술로 소생한 인간의 시체)와 같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멍하니 정신 나간 채 지켜만 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 한 명쯤이야 함께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축구 중계를 볼 때에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사람이, 연출된 드라마에는 눈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얼굴을 들이 밀면서 보다가 안 되겠다싶어 주인공을 살려라 죽여라 댓글을 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당한 간섭을 줄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으로 간섭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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