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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AI’가 휩쓸고 간 양계농장…공무원은 ‘살처분 작업 중’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김형태기자 송고시간 2017-01-04 18:47

"AI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가금류 살처분 모습./아시아뉴스통신 DB

고병원성 ‘AI’가 충남 천안시 양계농장을 덮친 날은 쌀쌀해지기 시작한 10월 중순 이었다. 이 때 시작된 AI는 11월과 12월을 지나 어느새 2017년 정유년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AI가 휩쓸고 지나간 지 두 달여. 지난 12월 31일 천안시에서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예방대책을 시행한 이래 처음으로 강제 살처분 집행이 진행됐다.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의 한 농가 입구에서 내려다보는 양계농장에는 잡으려는 공무원들과 살기 위해 도망다니는 닭들이 엉망이 된 모습이었고 마당에는 녹색포대에 담긴 닭과 오리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마치 전쟁터 같은 농장 곳곳에는 젖은 채로 나뒹구는 가금류 깃털이며 각종 사료, 농기구, 흙덩이 등이 잔뜩 이다. 일부 농기구 등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이물질이 가득한 채였다.

공무원들이 저마다 가금류 포획에 한창일 때, 농가 주인은 본인이 사육해서 키워온 닭이며 오리가 잡혀가는 것을 막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지침을 수행하기 위해 묵묵히 작업에 열중했고 약 1시간여 만에 양계농장에서 사육하던 가금류 모두를 포획했다. 결국 농장주는 텅빈 농장 밖으로 가금류의 살처분 되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봤다.
 
천안시 공무원들이 AI 사태에 맞서 대책회의하는 모습./아시아뉴스통신=김형태 기자
 
천안시 광덕면 일대는 충남에서 가장 큰 AI 피해를 입은 곳 중 한 곳이다.
 
농민의 생계 수단이었을 닭이며 오리가 있던 자리에는 여러 농기구가 마치 버려진 것 마냥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 경찰, 소방, 보건 당국 관계자 등 4개 기관 190여 명은 이날 흙탕물로 질척거리는 농가를 다니며 흙과 사료 더미로 엉망이 된 가금류를 건물 밖으로 꺼내고 자루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농가 마당에 쌓인 가금류를 공무원들이 연신 자루에 담아냈지만 끝이 없다. 엊그제만 해도 소비자에게 팔렸을 닭과 오리는 예방살처분 작업자의 손에 의해 생명을 잃어갔다. 바라보는 농장주의 한숨에 공무원들도 착잡한 심경이다.
 
포대에 담겨 있는 가금류를 나르는 천안시청 축산식품과 소속 직원은 “뉴스에서 보고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와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며 “소중한 재산이 버려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농장주의 마음을 생각하니 작업을 하면서도 미안하고 말문이 막힌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충남 천안시청 대회의실서 진행된 '고병원성 AI 방역대책 보고회'에서 서철모(왼쪽) 부시장이 답답한 표정으로 이준원 농식품 차관의 대책 발표를 듣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김형태 기자

서철모 부시장은 “막상 현장에 나와서 상황을 보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뉴스로 볼 때보다 상황이 너무 처참하다. 우리 시에서 최선의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찾고 있고 대화도 시도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제도적인 것이기에 마음이 상한 농민들의 마음을 온전히 보듬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강제집행이 시행된 농가는 지난 12월 15일 AI 확정 판정 농가로부터 약 100여 미터 인근에 위치해 있어 예방살처분 진행을 위한 요청을 계속해왔지만 농장주의 반대로 시기가 많이 미뤄져 있었다”며 “안내장도 두, 세 차례 건냈고 만나주지 않아서 집에 놓고 오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춰보면 시간의 문제가 있다 뿐이지 발병될 가능성이 높아서 예방적 살처분을 했지만 안타깝고 법적으로 보상되는 부분과 시에서 조치할 수 있는 범위 등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AI발생 농장의 한 농민은 “닭과 오리가 살고 있던 농장은 형체만 남은 채 너저분한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살아갈 방법이 사라져 버렸다”며 “농민들 대부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 재산의 전부를 AI가 빼앗아 가버렸다.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우린 생계를 이어갈 길이 막막하다. 제발 나라에서 생존권을 충분히 고려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소연하는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천안시 관계자는 “오늘은 또 어느 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 AI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했다. 농가도 공무원도 이들 모두에게 ‘AI’라는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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