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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야 뱅뱅 돌아진 섬에 - 문봉순] 제주신화 속 제주여성 만나보기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2-02 22:03

공간 개연성으로 살펴 본 이공본풀이와 강정동 개구름비당
서천꽃밭은 죽은 이들의 공간이며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꽃길치기의 현장. (사진제공=양동규)

[신화 속의 꽃]  제주신화 '이공본풀이'는 꽃에 대한 신화이다. 주인공 할락궁이는 무릎까지 차는 물, 잔등까지 차는 물, 목까지 차는 물을 건너 서천꽃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이자 꽃밭을 관리하는 꽃감관인 사라도령을 만나 여러 종류의 꽃을 얻어 어머니를 살려낸다.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다. 생명꽃, 번성꽃, 환생꽃처럼 죽은 자를 살려내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꽃이 있는가하면, 웃음꽃, 울음꽃처럼 울고 웃기는 꽃이 있고, 멸망꽃, 악심꽃처럼 사람을 멸망시키고 죽게 하는 꽃이 있다.

서천꽃밭의 꽃은 새로운 생명과 부활,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 제주도 굿에서 꽃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음을 주기도 한다. 결국 심방은 굿을 통해 서천꽃밭의 생명의 주화(呪花)를 따와 굿을 하는 집안의 인간을 살려낸다.

 서천꽃밭의 꽃들은 광천못에서 기른 물로 자라나는데, 광천못에서 물을 떠와 꽃들에게 주는 것은 죽은 아이들이다. 15살 이전에 죽은 아이들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서천꽃밭에서 살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어서 굿을 할 때 꽃길을 만들고 길치기를 한다. 죽어야만 갈 수 있으나 저승계도 이승계도 아닌 곳, 서천꽃밭은 그래서 죽은 이들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마음의 기도, 제주신화의 근간이다. 꽃길치기의 한 장면. (사진제공=양동규)

[돌굽 낭굽에 기원하는 사람들]  신당 조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빨갛고 파란 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를 보며 무서움이 들기도 했고, 제물로 올렸던 과일과 밥이 썩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신당의 수가 너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부터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당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질문은 바로 ‘사람들은 왜 신당에 가는가?’였다.

 서귀포 강정동 개구름비당을 찾아갔을 때였다. 아무리 찾아도 개구름비에 있다던 당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마을에 공사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개구름비에 다닐 수가 없게 되어 냇길이소에 있는 당 옆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때 “왜 당에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요즘은 병원도 있고 약국도 있지만 옛날에는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돌굽 낭굽에 가서 빌었주게.”

이 대답은 제주도 무속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바꾸게 했다. 이방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제주여성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했고, 동시에 거창한 의미를 찾고 멋진 이유를 발견하려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에게 할머니의 그 말은 결핍이 많은 섬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이 생에서 만나는 시련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지혜, 이것이 바로 신당이 가지는 본질적인 기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돌굽 낭굽’은 제주어로 돌 뿌리와 나무 뿌리를 말한다.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마음의 기도, 돌 뿌리와 나무 뿌리에 가서 빌었던 그 간절한 마음이 제주의 아이들을 길러냈고 제주여성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제주섬문화연구소에서 제주신화를 공부 중인 문봉순 연구실장.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 문봉순 / 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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