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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사대부의 높은 기개와 멋까지 곁들인 대통령은?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2-02 22:10

지천명을 지난 대선 후보들, 세한도 판각하고 캠프에다 걸어 두고 시작하면
세한도의 노송처럼 이상에 가까이 노력하는 대통령 후보를 강조하는 필자.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세한도는 제주 유배 중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의 한결같은 마음에 감격해 그려 보낸 작품이다. 어떻게 한결같은 마음에 감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발문에 표현을 자세히 하였다.

그림은 복판에 밑동이 부실한 노송 두 구루를 그리고 왼쪽으로 두 그루의 젊은 잣나무를 그렀다. 그 밑에 와가 한 채가 있다. 그림 제목으로 '歲寒圖 藕船是賞 阮堂'이라 하여 누구에게 주는 것인지 분명히 하였다.

그림에도 받는 이가 받을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문은 알려준다. 조선시대 문인화라는 것이 사실적인 현태의 묘사보다 내면에 스며있는 정신의 표현으로 문인 사대부들의 높은 학문, 인격의 수양, 철학적인 멋과 기분을 중히 여겼다고는 하나 그 간결함에 놀란다. 발문이 없다면 그림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시서화가 하나의 작품으로 융합된 것이다.

오늘 이 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문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서도 아니요, 날씨가 춥고 계절이 춥다보니 발문에 쓰인 글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니 기회에 다시 보니 새삼 추사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된다.

발문의 내용을 보니 더욱 그러하다. 이 시서화를 받아든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발문을 읽어 내리는 동안 “눈물이 저절로 흘려 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긴 글이지만 발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去年以晩學大雲 二書寄來, 今年又以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非一時之事也, 旦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非心非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稿之人,如世之趨權利者,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者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松柏是母四時而不凋者,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無可稱, 由後之君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己,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嗚呼!西京淳厚之世以波鄭之賢, 賓客與之盛衰,如下??門,迫折之極矣,非夫!阮堂老人書.

지난해 '만학집(晩學集) 8권'과 운경(?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8집' 두 책을 보내주고 올해에도 하장렬(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그것을 얻으려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쉽게 될 일도 아니다.

지금 세상은 오직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넘치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 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러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 그 넘치고 넘치는 권리를 좇는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태사공 사마천의 말이 잘못되었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한 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더디 시들음을 안다”고 하셨다. 성백은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시들지 않는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송백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한가지라. 성인이 특히 추위가 닥친 이후의 그 것을 칭찬하셨다.

이제 그대와 나의 관계는 그 전이라도 더 할 것 없고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전날의 그대는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이제 와서 그대는 성인께 칭찬받게 되었다.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더디 시드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 전한(前漢)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 흩어지건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인심의 박절(迫切)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이 후의 스토리가 궁금하여 또 자료를 찾아 보았다. 이 세한도를 전해받은 이상적이 세한도 한폭을 엎드려 읽은 후 

“눈물이 저절로 흘려 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이 그다지도 분수에 넘치게 추정하였으며 감개가 진실하고 절실하였을까요?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도도히 흐르는 세파속에서 권세와 이해를 따르지 않고 초연히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작은 마음으로 스스로 아닐래야 아니할 수 없어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하물며 이런 서적은, 비유하건대 몸을 깨끗이 하는 선비와 같아서 권리와 세도에 맞지 않으므로 절절로 맑고 시원한 세계에 돌아가기 마련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 번 걸음에 이 그림을 가지고 연경에 들어가 표구를 해서 아는 분들에게 보이고 시문을 청할까 하옵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저를 참으로 세속을 벗어나 세상의 권세와 초월한 것으로 안다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

이렇게 이상적은 궁지에 처한 추사에게 사제의 도를 나타내고 이듬해 동지사 이시응의 일행을 따라 연경에 가서 기회를 기다려 학자들이 모이는 연회에서 세한도를 펼쳐 추사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고는 그에게 위안이 될 글귀를 한 구절씩 적어달라고 요청하여 가지고 돌아와 추사에게 부쳐 주었다.

내가 본 자료에 비추어 글이 길어질까 줄이고 줄이느라 감동이 덜할 듯 하나 작금에 시대에 이 글을 대하는 느낌은 시간이 흘려도 세상사 인심의 생김새는 비슷한가 보다.

스승과 제자의 의리가 주는 감동, 세속의 잇속에 대한 유혹과 그것을 마다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의리,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부끄러움까지 사람에 대한 진한 스토리가 느껴지는 감동의 드라마다.

드라마가 죽은 시절에 검은 먹장구름은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하늘에 계속 머물고 있다. 그야말로 시절은 대선의 시절이요 탐욕의 시절이다. 이미 비정상이 정상과 혼돈되어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절 읽어보는 따뜻한 이야기는 추운 계절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왜 사람들이 세한도 그림을 판각하고 집에다 걸어 둘려고 하는지 지천명에 들어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알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어 감동으로 가슴앓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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