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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 원산지 완도군, 홍보 열 올려

[광주전남=아시아뉴스통신] 고정언기자 송고시간 2017-02-20 10:34

황칠 지리적표시 증명포장 출원... 상품화 박차
완도군이 황칠 지리적표시 증명포장을 출원하고 상품화에 박차를 가하는 등 황칠 원산지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사진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479호인 보길도 정자리 황칠나무.(사진제공=완도군청)

전남 완도군(군수 신우철)이 황칠 지리적표시 증명포장을 출원하고, 완도 황칠 상품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언론과 방송을 통해 황칠나무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황칠나무 묘목을 비롯한 황칠진액, 황칠차와 같은 황칠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며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군은 이에 발맞춰 황칠 생산기반 조성을 위해 일반농가 300ha에 황칠조림을 실시하고 있으며, 완도가 황칠의 원산지임을 홍보하고 있다.

또한 완도황칠의 우수성을 알리고 믿고 구매 할 수 있도록 지리적표시 증명포장을 출원하고, 황칠협회와 연계해 황칠제품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황칠나무의 학명은 'Dendropanax morbifera'로 그리스어로 나무인 'Dendro'와 만병통치약인 'Panax'가 합쳐진 'DendroPanax'로 불리며 황칠의 효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문헌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보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중국 통전, 삼국사기, 해동역사, 조선왕조실록 등 매우 많은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중에 황칠의 주산지가 예로부터 완도라는 것 또한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덧붙여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갑옷이나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의 휘황한 광채로 눈을 부시게 해 귀족들에게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돼 조공이나 수탈의 대상이었으며, 완도를 대표하는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 물품 중에서 황금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는 가장 고가의 상품이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 1823년(순조 23년)에 실학자 한치윤과 조카 한진서가 쓴 '해동역사' 죽목류편에 보면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개의 섬에 황칠나무가 난다. 황칠은 가리포도(현재의 완도)에 유일하게 생산된다”라고 기술했으며, 다산 정약용의 '탐진촌요'에서는 “완도산 황칠은 유리마냥 찬란해 진기한 나무라고 천하에 소문났네”라고 적혀있다.

다산 정약용의 황칠 이라는 시에는 ‘그대 아니 보았는가/ 궁복산(궁복은 장보고의 호, 궁복산은 현재의 상왕봉) 가득한 황금빛 수액을/ 그 빛이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길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주리요/ 이 나무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해서 박물지에 줄줄이 그 이름 올라 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정조 18년(1794) 조선왕조실록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는 “완도지역 황칠의 산출은 전보다 못한 데도 추가로 징수 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어 이 또한 완도가 황칠 주산지임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군은 고문헌에도 나와 있듯이 완도가 황칠의 주산지임을 알리며,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완도 황칠나무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건강식품 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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