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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웅 칼럼 – 제주살이] 겨울, 제주바다 위에 서다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3-07 11:39

섬에서 또 떨어져 나와 작은 섬으로 만나는 나(self)
사계 마을 앞 형제섬 인근 바다에서 황금바리를 낚은 필자, 생일선물로 제격이다.(사진제공=전영웅)

바다에 선다. 너울대는 파도 따라 배도 일렁이고, 나는 난간을 잡고 다리에 긴장을 준다. 얼마간을 달려 배는 멈추었고, 산방산과 한라산이 멀리 한 눈에 보였다.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였고, 몸의 긴장도 늦추어지지 않았다. 

바람은 예리하고 차갑게 얼굴을 베는 듯 지나간다. 하루 한 나절, 나는 그렇게 섬에서 떨어져 나와 작은 섬이 되었다. 바다에 서는 일은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인간의 터전은 땅을 기반으로 한다. 탄탄한 땅을 딛고 서며 균형 잡힌 걸음을 걷는다. 탄탄한 땅 위에 자연의 많은 것을 거스르며 몸을 보존할 작은 공간을 만든다. 

바다 위에서는 모든 것들이 전복된다. 다리의 균형은 바다의 너울에 내맡겨진다. 전정기관은 생소한 균형에 적응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엔 속엣 것들을 게워내게 만들기도 한다. 

균형은 다리만으로 힘들고 한 손은 잡을만한 배 위의 고정물을 잡아야만 한다. 바다 위의 바람과 볕은 땅 위에서보다 더 거칠고 강렬하다. 구름이 없는 날이라면, 볕은 위와 아래에서 쏟아진다. 

선글라스가 없다면, 눈부심은 금세 피로가 되어 눈을 감게 한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오랜 시간 누적이 되면 피부는 검게 변한다. 

바람은 날 것 그대로 얼굴을 때린다. 모자나 후드가 없다면 겨울바다의 포말 섞인 바람은 견뎌내기 힘들다. 얼굴은 햇볕만으로 타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각질은 말라버리고, 냉기는 피부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얼굴을 차고 벌겋게 만든다. 

몸이 견뎌내야 하는 몇몇 변화만으로, 바다의 질서는 인간이 겪어온 그것과는 전혀 다름을 깨닫는 것이다. 새로움 또는 생소함에 적응하며 땅을 바라보는 일은 그리움이다. 배에 올라 바다 위에 선 것은 나의 의지였지만, 날 것과 새로움에 긴장한 몸은 시선을 끊임없이 땅으로 던진다. 
 
사계 마을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배를 타면 산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사진제공=전영웅)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바다 가까이 자리한 사람들이 사는 터전들.. 보이지만 당장에 갈 수 없는 저 곳은 작은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움이 커지면, 고립감역시 커진다. 

바다 위 일렁이는 작은 배 안의 몇 안되는 일행은 일정시간 운명공동체가 된다. 고립된 운명공동체의 사회는 각자의 목적과 가장 기본적인 유기적 관계로 약속된 일정시간을 유지한다. 일정시간의 작은 공간 안에서의 고립은 각자의 목적을 제외하면 마음을 위축시킨다. 

좀 더 날것의 바람과 파도의 일렁임이 마음을 더 위축되게 만든다.  땅에 발을 딛기까지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 몸과 마음에 급격히 배어드는 소금과 한기의 이질감까지.. 바다에 서는 일은 거의 모든 것과 대립하고 감내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바다에 나가는 나의 몸과 마음이 그러한데, 직업이 되어버린 바닷사람들은 얼마만큼의 적응의 시간을 보내어야 했던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배 위에 한두 번 올라보면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진다. 옷자락에 한기 가득한 바람을 몰고 들어오는 이들. 진료실에서 마주한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검고 거칠다. 손은 부어오른 듯 투박하고 두껍다. 몸을 위한 관리라는 것은 그다지 생각해 본 것 같지 않은 습관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뱃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거칠었다. 마치, 자신이 속한 질서는 땅 위의 것이 아니라는 듯, 자신의 전정기관은 땅 위를 적응하느라 힘들다는 듯 재촉하고 요구한다.  땅과 바다 위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고 존중한다. 
 
박수기정과 화순마을 뒤로 보이는 한라산, 배를 타면 산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사진제공=전영웅)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서로가 의지하고 기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좋아한다. 내 삶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물을 끼고 있었고, 이제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서 정주의 삶을 꾸리고 있다. 가끔씩 배에 오른다.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데, 해마다 생일즈음엔 나름 스스로에게의 선물이라는 의미에서 배에 오른다. 

올해에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배에 올랐다. 영등할망 오신다는 날은 아직 멀었는데, 바람은 차고 거친데 파도까지 그러한 날이었다. 파도의 포말이 거센 바람에 날려 뺨에 쏟아지는 추운 바다였다. 일렁이는 파도와 바람이 바다 한복판에서 몸을 더욱 힘들게 만든 날이었고, 그래서 마음엔 한기가 배이고 생소함과 고립감에 외로움이 더한 날이었다. 

구름한 점 없는 공기에 산방산과 한라산이 더욱 선명했다. 난간을 잡고 균형을 잡으며 바라보는 그 광경이 그리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한나절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고립이라는 조건이, 버거움과 그리움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낚시가 잘 될 리가 없는 날, 그래도 나는 귀하다는 황금바리 한 마리 건져 올렸다. 선장은 생일선물로 용왕님이 주신 거라며 기뻐했다. 나 자신에 준 선물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던 날이었고, 버거움이 한 방의 조과로 보상을 받은 날이었다. 

힘든 시간은 견딤과 함께 생각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난간을 붙잡은 채 균형을 잡고 쏟아지는 포말을 견뎌야 했던 그날의 감각이 아직 생생하다. 그것은 짜증이나 불만이 아닌, 경험과 이해의 시간이었다. 

* 전영웅 - 서귀포 새론의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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