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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웅 칼럼 - 제주살이] 516도로, 일상으로 내려오는 행복한 도로로 기억되길

‘세계 평화의 섬’제주도 대신 보편의식 회복의 섬부터 시작해야

(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기사입력 : 2017년 03월 19일 23시 40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중요축 도로인 516도로 표지석.(사진제공=전영웅)

제주에서 성판악을 지나 서귀포로 이어지는 현재 516도로라 불리는 도로를 좋아했다. 봄의 기운이 넘치던 5월의 어느 날, 학회 참석을 위해 제주로 왔다가 렌트카를 몰고 생각 없이 들어선 그 길에서 점점 짙어지는 연두빛 순으로 하늘을 가린 광경에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제주에 살면서도, 그 길은 차를 몰면서 마음을 내려놓기 좋은 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서면, 발길은 자연스레 그 오르막으로 향했던 것이다. 산천단의 작은 까페를 들러 커피를 마시고, 제주마 방목지의 너른 들판과 멀리 숲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노루들을 바라보았다. 

교래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사려니 숲에서 잠깐 누워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오르막을 기대듯 직진하여 조금 오르면 성판악에 다다른다. 거기서 약수물 한 모금 마시고 내리막을 달리면 마음이 두근거렸던 기억의 숲 터널에 들어선다. 

길이 넓어지는 서귀포에 이르면, 때마침 그날이 맑다면 멀리 보이는 시가지와 바다풍경이 기분을 들뜨게 한다. 다시 서귀포에서 오르막을 달리면, 한라산의 웅장하고 부드러운 능선은 숲이 아닌, 작은 풀들로 뒤덮인 들판같이 보인다. 구름과 안개가 낮은 날은 숲의 풍경을 신비하게 바꾸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제주에 입도하면서부터 516도로라는 명칭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이야기할 때, 성판악로라는 이름으로 말한다. 

명백하게 반 헌법적인 쿠데타가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에 이름으로 새겨져 긍정적 의미로 기념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4.3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었던 섬에서 군사 쿠데타의 이름이 도로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왜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40여년이 흘렀다는 사실의 부대낌은, 박정희 초상화가 걸린 어느 고기국수집의 모습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념한다는 기억한다는 뜻이다. 잊지 않기 위한 대상은 마음에 합리적으로 들어앉아, 차분해지는 것들이다. 기뻤던 일들일 수 있고, 슬펐던 일들일 수 있다. 

누군가의 공적을 기억하기 위함일 수 있고, 억울하게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추모일 수 있다. 4.3을 기념하는 일은 공권력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학살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함이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또렷이 새겨진 516도로 표지석.(사진제공=전영웅)

대정의 어느 길 이름이 추사로인 이유는, 유배당해 머물렀던 김정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의 유배 이유와 유배생활이 보편상식에 거스름이 없기 때문에 도로명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제주섬의 대표 횡단도로에 명백한 위헌행위인 군사 쿠데타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기념이나 기억의 목적과 거리가 있다. 

그것은 보편의 합리성에 맞지 않는 어떤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고, 역사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 근대사만으로도 516이라는 명칭은 차분한 마음보다는 의아한 마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516도로라는 명칭이 부여된 과정만으로 그 이름이 왜 불편함을 유발하는지 알 수 있다. 1969년 횡단도로 포장이 완료되던 시기의 도지사는 쿠데타 당시 해군 소장이었던 김영관으로, 박정희의 글씨를 받아와 도로기념비에 새겨 넣으면서 516도로라 명명하였던 것이다. 

보통의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전무했던 독재시절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의도를 가지고 벌일 수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실 공공시설이나 도로의 명칭은 시대의 분위기나 보편의식을 반영한다. 번영로, 산업도로 등의 명칭은 경제발전이 최우선인 시대의 의식이 반영된 이름이고, 평화로는 ‘세계 평화의 섬’이란 거창한 프레임을 기념하기 위한 이름이다. 

그런데 516도로라는 명칭은, 시대의 분위기나 보편의식에도 어울리지 않는 도드라진 이름이다. 그런 이름이 40여년이나 지속되며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보편의식의 수준문제이다. 

합리적이지 않고, 마음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바로 고쳐야 함이 맞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 516 군사 쿠데타는 명백하게 잘못된 일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기억하고 기록하되, 반성의 의미로 흔적 정도만 남겨 충분한 대상인 것이다. 난 여전히 그 길을 좋아한다. 구불구불하고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천천히 달리며 만나는 풍경과 공기에 살아감의 버거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섬에서 살아가고 있음의 행복과 감사함을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리가 판단한 탄핵이 인용된 시대에, 박정희의 망령은 누군가의 회상정도로 묻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난 그 합리가 내가 좋아하는 그 길에도 인용되었으면 한다. 

보편의 의식도 그 합리에 더불어 한 껍질 벗고 성장했으면 한다. 그 길에 부여될 아름답고 편안한 이름은 많고, 우리는 군사독재의 시대가 아닌 민주적 시민사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 새론의원 부원장으로 근무하는 필자 전영웅. (사진제공=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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