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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근의 진짜웨딩] 주례사는 짧게 부탁드려요?

[부산=아시아뉴스통신] 김다롬기자 송고시간 2017-04-02 11:39

웨딩칼럼니스트 권경근./아시아뉴스통신 DB

보통 예식장이나 호텔의 홀을 담당하는 컨시어지들은, 주례선생님을 만나면 꼭 건네는 한마디가 있다. “주례사는 짧게 부탁드려요” 결혼식에 참석한 일부 하객들은, 주례사를 시작하면 식사를 위해 연회장으로 이동하거나,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주례사로 온전히 결혼식에 집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반면 유명한 탤런트 선생님을 주례로 모신 결혼식에 사회를 맡은 적이 있었다. 하객 모두가 주례사에 귀를 쫑긋 세워 그렇게 집중하는 모습은 사실 처음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주인공인 신랑 신부보다는 주례선생님에게 시선이 더 많이 가는 느낌도 들었다.
 
지금의 결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우리는 당연히 주례선생님을 모셔야 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례 없는 예식을 생소하게 느끼지 않는 하객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내가 사회를 맡은 예식을 돌이켜 보아도, 절반 정도는 주례 없는 예식으로 진행을 해왔다.
 
우리의 전통혼례는 어땠을까? 전통혼례는 혼담(신랑이 신부에게 청혼), 납채(신랑의 사주를 적어 신부 측에 보내는 것) 등 6례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중 대례(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서 부부가 되는 의식을 올리는 것)가 지금 형태의 결혼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통 혼례의 과정 중에서 주례사를 하는 주례는 없었다. 대신 혼례를 진행하고 이끄는 집례가 있었다. 과거 집례를 주로 마을의 유지나 신부 아버지와 가까운 어른이 맡았다고 한다. 그들은 절을 시키고 술잔을 돌리며 혼례를 진행했다.
 
이런 혼례 풍속에서 개화기를 맞이하며, 기독교와 같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예식 문화는 점차 바뀌기 시작하였다. ‘예배당 결혼’이라고도 불리는 서양 문화권의 예식은 절차가 간단해서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주례인 사제가 하느님을 대신해 결혼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부부의 해로를 맹세하는 분위기와 하객이 이 맹세의 증인이 되는 형태였다.
 
웨딩칼럼니스트 권경근./아시아뉴스통신DB

그렇다면 지금의 주례는 어떻게 유래하게 된 것일까?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서양 문화권의 예식에서 목사나 신부의 역할과, 우리나라 전통적 집례자의 역할이 혼합되면서, 집례와 덕담을 남겨주는 쪽으로 주례가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례가 일제 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정책’ 중 하나였다는 의견도 있다. 전통의 한국 결혼문화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이 독립운동을 모의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례(당시 집례 역할)를 일본인으로 세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결혼문화를 구식으로 폄하하고, 결혼식장을 만들어 현대 형태의 결혼식을 신식 결혼식이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는 주례사 문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례 대신 신랑과 신부의 가족과 소수의 친구가 덕담을 건네거나 축하를 한다. 게다가 신사나 교회 등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열리고, 이후 피로연을 크게 열곤 한다.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과 일본의 한 장교가 결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 일본강점기 속 결혼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상에 서 있는 사람은 주례가 아닌 식을 진행하는 집례라고 볼 수 있다. 신랑 신부의 입장을 돕고 순서를 이야기하는 등 축하와 덕담은 양가의 아버지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종합해보면 한국 전통의 결혼은 주례가 없는 잔치 분위기의 결혼문화였던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또한, 현대 한국의 결혼 문화에서 주례는 존경받는 어른이, 부부에게 덕담과 축하를 하는 건전한 문화로 자리 잡았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진정한 멘토를 주례로 모시는 것, 또는 주례 없이도 두 사람이 주인공이 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다만 그동안의 결혼 문화에 익숙했던 부모님이나 친인척의 의견으로 주례를 모시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개인적인 바람은, 결혼하는 당사자인 두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고, 또 그 결정을 주변인들이 존중해줄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결혼식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다.
  
◆ 아시아뉴스통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권경근 대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우로 데뷔해,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홈쇼핑 쇼호스트, 리포터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권경근의 잘 말하는 연구소 대표로, 한양여대, 동아방송예술대 등 대학에서 스피치, 소통 강의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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