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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칼럼 - 제주야담 400042] 촛불 이후 제주미술, ‘4.3 미술제와 제주비엔날레’ 사이(上)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5-15 00:22

‘회향, 열린 공간’으로 살펴본 제주미술의 현재
제주미술도 이념과 조형성을 오롯이 담아 낼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지난 13일 제24회 4.3 미술제 총평의 자리를 끝으로 회향전의 마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9월 개최를 눈앞에 둔 제주비엔날레는 현재 <아트올레>가 진행 중이다.

진행 과정에서 대두된 몇 가지 개선점을 보완한다면 제주 4.3은 철학적 개념으로서 리얼리즘의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제주미술에서 제주 4.3은 철학적 배경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혹자는 제주미술에서 제주 4.3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말했다. 제주비엔날레는 제주미술의 미래와 동일한 지점에 위치한다. 

참여 작가의 최종 명단이 6월에 발표된다고 하니 <제주비엔날레>는 다음 편에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4.3 미술제를 다루기로 한다.
 
역사와 공간의 상관성이 돋보이는 정문경 작 '멀미'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리얼리즘으로서 4.3미술은 현대미술의 한 축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최근 제주미술의 스펙트럼은 다양성과 심플함 혹은 미니멀리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다양성은 외부로의 개방성에 대한 것이라면 심플함 혹은 미니멀리즘은 방향성에 대한 개념이다.

그간 4.3미술은 ‘비념’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에 조형(미적)적 평가에 있어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24회 4.3 미술제는 변경된 방식과 확장된 플랫폼을 통해 실험을 선택했고 나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요배 작가가 제주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지난 6일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그날 이후>전을 가진 이명복 작가가 그 뒤를 잇고 있고, 몇몇 젊은 작가들이 눈에 띄지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전시 기획 혹은 미술기획으로 눈을 돌리면 김준기 도립미술관 관장과 24회 4.3미술제 <회향, 공동체와 예술의 길>전을 진행한 양은희 씨와 제주비엔날레 김지연 예술 감독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개방성’의 징표이자 ‘사람의 미술시대’가 열리는 증거들이기도 하다. 2017년 도립미술관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음은 4.3미술제에 참여한 13개 열린 공간 속 작품을 소재 중심으로 분류해서 정리해 보았다.
 
서성봉 작 '눈동자'는 작가적 배려가 아쉬운 공간에서 설치됐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변화의 가능성, ‘회향’

탐라미술인협회와 양은희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원도심을 통한 회향’이다.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본다’는 회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할 만한 4.3 공간을 따라가 보자.

그 첫 번째 공간은 관덕정이다. 1947년 3월 1일 최초 발포와 4.3의 도화선이 되었던 곳으로 69주년 4.3 행사의 중심무대이기도 했다. 인근에 위치한 향사당과 간드락이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었다.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던 북초등학교에서는 청소년 4.3 문화교실을 통해 ‘세대전승’을 이야기했고, 1950년 예비검속 후 많은 민간인들이 수장됐다는 산지항도 공간을 내어 회향의 의미를 더해줬다.

4명의 작가가 동원된 황지식당은 고씨가옥과 유성상회를 이어주는 역할로 좋았다. 주정공장도 1949년 이후 3,000여 명의 민간인들이 강제 수용되었던 공간이다. 하지만 지역 공간에 눈을 돌려 13곳의 장소를 활용한 의도는 주효했지만, 부족한 예산과 시간으로 연출의 효율성은 한계를 드러냈다.

제도권 미술로의 승격, ‘저항‘

화가 송맹석(이디아트, 관덕로 8길)은 작품 ‘불의 노래-항거’를 통해 모든 역사에서 억압하는 구조와 세력에 저항하는 민초의 갈망이 온 산하에 깃들어 있음을 불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홍덕표는 ‘또 어떤가?’와 ‘해충’을 통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었던 그 시대의 상황을 벌레 퇴치제의 대표 격인 에프킬라와 미군으로 표현했다. 너무나 무가치하고 몰인정하게 희생된 제주 4.3, 에프킬라를 등에 짊어진 미군의 모습은 이런 몰인정과 무공감 상태를 상징하고, 작품 속 국산 무기인 에프킬라는 미군정과 이승만의 제주 초토화 작전에 동포를 죽이는데 앞장선 자들을 상징한다.

박영균(이상 아트스페이스C, 중앙로 69) 역시 작품 ‘사려니숲 이덕구산전 가는 길Ⅱ’을 통해 1948년 사려니 숲길에서, 이덕구 산전에서 곶자왈 숲에서 허공으로 날아간 수많은 총알들의 포물선을 그려냈다.
 
다수가 선망한 고씨가옥서 만난 양미경의 '지워진 사람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죽음을 상징한 헛묘와 무명치마

양미경 작가(고씨가옥, 관덕로 17길)의 ‘지워진 사람들’에서는 눈물 젖은 무명치마를 만나게 된다. 옳게 죽지 못하고 널브러진 죽음 앞에서 무명치마는 주검을 감싸 안았고, 오랜 세월 땀과 눈물이 뒤범벅된 채 누렇게 변해갔다. 가슴깊이 맺힌 망자의 한을 씻어 주기 위해 후손들은 옷가지를 담아 봉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검마저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죽음들. 죽어서도 몸부림치고 있는 주검들이다. 덮어주지 못한 죽음, 감싸주지 못한 주검들은 죽음의 빛깔로서 뼈와 숯 그리고 재와 함께 발버둥 쳤다.

정문경(황지식당, 임항로 57)은 작품 ‘멀미’를 통해 오래 전 뱃사람들이 거쳐 간 공간은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교집합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시간과 조형의 경계를 느끼게 만든 박진희 작 '질문의 숲2'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제노사이드의 상징 ‘시간의 미술’

작가 김영화(향사당, 중앙로12길)는 작품 ‘얽히다’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고 싶은 안달을 표현했다. ‘저 실의 끝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시작과 끝이 있기는 한 걸까’라는 질문을 통해 빨리 풀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간절함을 드러냈다.

김수범 역시 ‘시간 없는 시간(들)’에서 어떤 시간은 역사가 되거나 신화가 되기도 하고 전설이 되었다가 그냥 묻히게 된다는 것을 시계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4.3 미술의 철학과 조형이 절묘한 김영화 작 '얽히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또 강동균(이상 이디아트, 관덕로8길)은 작품 ‘기억-1949년’을 통해 제주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사라져버린 마을 곤을동 유적지를 그려내고 있다.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공허한 마음, 그러한 마음을 모아 아물지 않은 역사적 현장을 드러냈다.

작가 고경화(간드락소극장, 관덕로 6길)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현재에까지 이어져 있는 제노사이드 민족의 대량 학살을 어떻게 풀어낼 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에 귀를 기울이면 제주미술이 개념성에 상당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감정적으로 아직 어려운 장르임에 틀림없지만 조형성의 확장에 따른 리얼리즘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세 남자의 사진 이야기

믹스라이스의 작품 ‘덩굴연대기’ 영상에는 숨겨져 있는 듯한 제주도의 신목 풍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덩굴로 둘러싸여 실루엣만 감지할 수 있는 작품 속 신목들은 우리들의 시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이다. 식물은 그 자리에 정착하면서 다른 시간대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어 낸다.

작가 조습(이상 비아 아트, 관덕로 15길)은 자신을 희화화하는 전략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연출된 이미지를 선보인다. 그러나 그가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제주라는 지리적 배경 속 인물의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통해 지역의 정서를 넘어서는 동시대의 실체를 이야기한다.
 
시간성을 상징하는 신목과 빌딩이 묘한 믹스라이스 작 '덩굴연대기'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생느행 카페, 중앙로 7길)은 ‘세모의 풍경’을 통해 초점을 잃은 듯 흔들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풍경이 흔들렸든, 그가 흔들렸든 공간은 모두 저마다의 생채기를 안고 있고, 그렇게 서로 흔들리는 모습을 미학적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미학과 조형의 새로운 경계, ‘제주 숲과 이미지’

제주의 뒤엉킨 나무와 덩굴과 검은 땅 밑을 감고 흘렀을 영혼들의 귀환을, 죽지 못하고 끝끝내 살아 꿈틀거리며 되돌아오는 자들의 고집이라 이야기했다. 그들은 왜 숲으로 갔을까?

4.3에서 숲이 주는 상징이 대단하듯 작가 박진희(이상 각 북카페, 관덕로 6길)는 작품 ‘질문의 숲2’를 통해 화석이 되어버린 함성들을 담았다.

작가 부이비(더 오이카페, 관덕로 6길)도 작품 ‘미생미사’를 통해 외진 곳에서 나무형틀에 묶인 한 사내의 공허한 절규소리를 나지막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신음소리로 표현했다. 이 땅의 모든 여자와 남자, 어른과 아이, 늙은이들 모두가 나와서 자기를 내리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사내의 운명은 지금의 제주미술을 보는 듯 아프다.

작가 정주원(랩 모나드, 중앙로 80)은 작품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 연작을 통해 부유하는 이미지를 그림의 소재로 사용했다. 작가가 경험했던 사건, 상황의 잔상을 무의식에 남아있는 이미지들로 소개했다. 작가 이샛별은 머그컵으로 표현한 작품 ‘언데드’를 통해 목 없는 자들의 고집, 영혼들의 귀환을 이야기했다.
 
육지와 바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을 연출한 정문경 작 '멀미'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4.3 미술제가 진행되는 동안 전시라는 물리적 형태보다 공동체의 제의라는 4.3 미술제만의 특성화된 형태를 이루어 낸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촛불정국에서 블랙리스트는 독특한 공동체를 잉태했고, 제주미술은 ‘회향’을 통해 독특한 미술생태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 삶 안으로 4.3 공동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작가들이 고심해야 할 미적 조형성의 문제가 과제로 남았다.

<회향, 흑과 백>전의 의미를 찾는 일과 <담소>라는 좌담회가 제주 미술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제와 성과의 간극을 누가 주도할지 상당히 기대가 크다. 다음 편에서 4.3 미술제에 참여한 작가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회향, 흑과 백>전의 의미와 좌담회가 가져다 준 제주 4.3 미술의 희망과 제주비엔날레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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