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9일 수요일
뉴스홈 사회/사건/사고
조상의 지혜 담긴 맛의 결정체 증편, 자연·시간·정성의 힘으로 익어가는 제주기정떡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윤자희기자 송고시간 2017-10-13 12:09

이보영 기자가 만난 사람-제주기정떡 한동진 대표 인터뷰
자료사진.(사진제공=이코노미뷰)

우리의 전통 간식인 떡은 담백한 맛과 특유의 식감, 우수한 영양성 등으로 국내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떡은 훌륭한 간식이 될 뿐 아니라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도 있고 다양한 잔치상이나 제례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그러한 떡 중 제조가 유독 까다롭고 많은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는 떡이 기정떡이다.

이 기정떡을 남다른 정성으로 묵묵히 만들어 내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 있어 본지에서 전격 탐방해 보았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제주도 고유의 식재료를 기정떡에 접목하여 제주도민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기정떡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는 제주기정떡, 그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기정떡은 막걸리로 발효하여 만드는 전통떡인 증편의 다른 이름이다. 오뉴월 땡볕에도 잘 쉬지 않아 예로부터 여름에 특히 즐겨 먹었던 떡으로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 고조리서에 만드는 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소중한 전통음식이다. 발효 과정이 까다롭고 생산 과정을 계량화하기 힘든 기정떡의 특성 때문에 전국 떡집의 약 90% 이상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한다. 공장에서는 대량 생산을 위해 효모와 같은 발효 촉진제가 일정량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삼남매가 운영하는 제주기정떡은 전통방식을 최대한 살려 일절 이스트와 효모 같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12시간 이상 막걸리로만 자연 발효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기정떡 특유의 시큼한 맛을 줄이면서 소화가 잘되도록 하고, 폭신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발효 방식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 제주기정떡의 설명이다.

이렇게 맛있는 제주기정떡의 시작이 문득 궁금해졌다.

해외영업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중 한국전통문화와 자신만의 물건을 수출하는 데 꿈을 두게 된 한 대표는 밤낮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장 어렵다는 기정떡을 공부하며 바닥부터 시작했다. 대규모 식품공장을 꿈꾸며 노력했으나 어려움이 많아 한 때 유명 프랜차이즈 공부방을 운영하기도 했고 그 역시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 한 달 회비가 97,000원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97,000원으로만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차 싶었죠. 내가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멈칫하는 순간 누나에게서 더는 떡공장 운영이 어렵겠다는 연락이 왔다. 공장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공장을 깨끗이 접을 것인가 떡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갈 것인가 하얗게 밤을 새며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납품 방식을 버리고 좋은 재료로 최고의 떡을 만들어 일반 판매를 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행히 오랜 시간 힘겹게 공장을 운영하면서 기정떡 기술은 더욱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낮은 납품 단가에 맷집이 단단히 들어 있었던 삼남매는 원가를 고려하지 않고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좋은 쌀을 골라 쓰고 비싼 제주산 천연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다. 제주도 특색을 살리기 위해 제주산 쑥, 백년초, 메밀, 한라봉을 기정떡에 접목했다. 오로지 맛에 초점을 맞춰 최적의 배합을 찾은 후 가격은 마지막에 책정했다. 소비자가 비싸지 않다고 느끼는 선에서 가격을 정하고 나니 모두에게 좋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그렇게 제주기정떡이 탄생했다.

제주기정떡은 별다른 홍보 없이 오로지 맛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면서 제주도민 뿐 아니라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한번쯤 들르는 명소가 되었고 선물용 수요도 많이 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서 많은 격려를 받기도 한다. 암투병 중인 한 소비자는 제주기정떡을 먹고 소화가 잘 되어 계속 찾게 된다며 이 맛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게 지켜달라며 직접 전화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그제서야 한 대표는 일에 사명감과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제품이 알려지면서 홈쇼핑이나 공항내 관관상품 매장 등 여러 곳에서 납품 요청이 들어오지만 한 대표는 정중히 거절한다고 한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높은 입점 수수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시 예전 납품 방식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드러운 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궁금했다. 한 대표는 기정떡을 만드는 일은 시간에 맡겨 두어야 한다고 했다. 서두른다고 급하게 빨리 만들어지는 떡이 아니라는 거다.

“저녁에 반죽을 해두면 밤새 발효가 진행됩니다. 새벽에 부풀어 오른 반죽을 확인하고 발효과정에서 생긴 기포를 잘 빼줘야해요. 그렇게 2~3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죽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면 또 기포를 잘 빼주고... 그런 과정을 서너번 진행하고 나면 새벽이 환하게 밝습니다. 12시간 이상을 견뎌낸 반죽이어야 소화도 잘되고 식감도 뛰어납니다.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떡이죠. 그래서 기정떡을 ‘떡중의 떡’이라고 했어요.”

반죽을 확인하기 위해 한 대표는 매일 새벽 2시 반이면 어김없이 작업장으로 출근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있는 일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한 대표의 얼굴에서 고집스런 장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먼 길을 돌아 제자리를 찾은 한 대표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제가 본래 꿈꿨던 해외 시장은 여전히 제게 유효합니다.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한 번도 그 꿈을 잊은 적이 없죠.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었을 때 기정떡은 그에 가장 적합한 떡이라고 확신합니다. 식감도 빵에 뒤지지 않고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됩니다. 보관도 간단해서 냉동보관 했다가 살짝 데워 먹으면 처음 만든 떡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죠. 또한 기정떡을 구워서 샌드위치나 토스트에 응용하면 빵에 견주어 훨씬 훌륭한 맛이 납니다. 많은 가능성이 있는 떡이에요. 이러한 기정떡을 냉동으로 수출하거나 해외에서 생산을 하고 싶습니다. 기정떡이 해외에서 대표적인 Korean Food가 될 날이 올 겁니다.”

한 대표는 그 꿈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한 발짝씩 천천히 내딛겠다고 한다. 지금은 매장을 찾아오는 손님 한분 한분이 소중하고, 멀리 육지에서 택배 주문을 주는 고객에 온 정성을 쏟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먼 곳만 바라보며 규모나 속도에 집착하기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큰 꿈을 펼칠 토대가 자연스레 마련될 것이라고 믿는 한 대표. 주변의 시류에 흔들림 없이 묵묵히 한발씩 내딛는 제주기정떡의 모습은 서서히 시간으로 무르익는 기정떡을 꼭 닮았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