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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명마(名馬)의 눈물

강릉시민 함동식

(아시아뉴스통신= 이순철기자) 기사입력 : 2017년 11월 07일 16시 20분

1791년 조선 정조 15년 진산(珍山)사건이 발생하였다. 진산 사건은 조선 최초의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박해 사건으로 신해년에 일어나 신해박해라고도 부르는데 카톨릭 신도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카톨릭을 신봉하였다는 이유로 참형에 처해진 사건이다.
 
진산 사건이 터지기 1년전인 1790년 조선 카톨릭 교회를 관장하고 있던 중국 북경교구의 교구장인 구베아(Gouvea)주교가 조선의 카톨릭 교회에 조상에 대한 유교적 제사 의식을 금하는 금지령을 내리자 전라도 진산에 살고 있던 윤지충과 권상연은 제사를 폐하고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는 이른바 폐제분주(廢祭焚主)를 결행한다.
 
이듬해 윤지충은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외사촌인 권상연과 더불어 유교식 상례를 따르지 않고 카톨릭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심지어 조문조차 받지 않았다.
 
윤지충은 윤선도의 6세손이며 권상연은 호서 유림을 대표하던 권시의 5세손이였으니 모두 기호지방 남인 명가의 후손들이였다. 지금이야 아무일도 아닌 일이지만 당시의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유교적 강상(綱常)의 질서를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이였다.
 
결국 이 사건은 조정에 알려져 그 동안 카톨릭 교회에 관대하였던 정조 조차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참형에 처하고 말았다.
 
당시 조선 사회는 카톨릭 교리를 서양의 학문이라 하여 서학이라고 불렀는데 남인계통의 관료나 학자들 사이에서 서학은 새로운 학문으로 많이 연구 되었고 카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 마저 생겨나게 되었다.
 
영조는 집권이후 노론과 소론을 함께 등용하는 노소병용의 인사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정조는 노소는 물론 남인을 중용하여 노론을 견제하는 정국 운영을 하였다.
 
그러니 정조는 남인과 가까운 카톨릭 세력에 관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산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 조정의 권력은 남인의 영수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쥐고 있었다.
 
정조는 채제공을 신임하여 영의정과 우의정의 자리를 비워둔채 좌의정 채제공만으로 의정부를 구성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채제공의 독상(獨相)체제이다.
 
독상체제라는 정치형태는 조선이 건국되고 처음 있는 일로서 정조 14년부터 16년 1월까지 햇수로 3년 만으로 16개월 동안 지속되어 온 독특한 형태의 권력 구조였다.
 
독상 체제는 영조 즉위 초부터 이어져 온 탕평인사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였으니 자연스럽게 노론의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산 사건은 노론측에서 카톨릭과 남인 정권을 연결시켜 채제공의 독상 체제를 타파하기 위하여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시킨 사건이었으니 결국 정조의 독단적인 인사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 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의 실패는 반대 당파의 저항을 불러오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니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정조와 문재인은 닮은꼴이다.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도 비슷하고 인사의 난맥상도 유사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각종 개혁과제를 수행하자니 아마 분주하고 정신이 없을게다.
 
대체로 새정부의 행보에 대해서 긍정하는 분위기이지만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게 있다. 인사 문제이다. 국회에서 인준이 거부된 김이수 헌재소장 대행체제를 유지 하고자 하는것도 그렇고 자고나면 한건씩 터지는 인사 참사는 국민을 피로하게 만든다.
 
안경환 법무, 조대엽 노동,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이 낙마했다. 새로 지명된 홍종학 중기벤처부 장관 후보자 역시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중이다. 가까스로 임명된 공직자 절반이상은 정권 출범 초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낙마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인사가 있었다. 11월 6일 청와대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성주 전 더불어 민주당 의원을 임명 하였다.
 
김성주가 19대 의원시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야당 간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고 하지만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액은 600조원이 넘는 규모로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위의 큰 규모이다.
 
우리나라 국가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액수인데 이런 중요한 자리에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을 임명한다는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11월 6일 청와대에서 국회의 청와대 국정 감사가 있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의 출석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무산되었다.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가 피감 기관인 청와대의 민정수석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야당과 언론의 문제제기를 정치공세라고 치부한다면 논리가 빈약해 보일 뿐 더러 앞으로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고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장애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인사 시스템을 점검하고 인사라인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인사 참사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겠지만 실무를 책임진 조 수석은 응분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여야 한다.
 
능력 없는자가 그 직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아직 정권 초기인데 벌써 개혁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독일 순방 중에 적폐청산을 두고 정권 차원의 복수라고 말하고 국회의 청와대 국감현장에서는 청와대를 주사파가 점령하였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적폐는 곧 부패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청산되어야 하며 주사파 논쟁은 과거 군사 정부가 학생 운동 세력을 북한과 연계시켜 고립 시키고자 했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역사의 진보라는 것은 항상 걸림돌이 있게 마련이고 개혁은 항상 어려운 난제일 수 밖에 없다.
 
국민 대중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 한 일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이렇게 민심과 동떨어진 인사 행태를 유지한다면 국민적 지지는 추락하고 개혁의 동력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개혁 군주인 정조도 노론에게 일격을 당한 진산 사건 이후 더욱 노론과 첨예하게 대립하였으며 경색된 정국은 정조 말년까지 이어졌다.
 
중국의 고전 전국책(戰國策)에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나온다. 백락이 한번 돌아 본다라는 뜻이다. 백락은 춘추시대 사람으로 본명은 손양(孫陽)이다. 백락은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말을 관리하던 사람으로 말의 관상을 잘 보았다고 한다.
 
백락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소금 수레를 끌고 가는 앙상한 말을 보고 한 눈에 명마임을 알아보았다. 백락이 말의 볼을 어루만지며 “천하의 명마가 소금 수레를 끌다니 참으로 원통하구나” 라고 말하자 말이 구슬피 울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명마는 항시 존재하지만 백락이 드물다고 하였다. 백락일고의 고사는 세상에 인재는 항상 있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현명한 군주가 없음을 한탄하는 고사 일 것이다.
 
새 정부가 계속 인사 문제에 있어서 파열음을 낸다면 민심은 돌아설 것이다. 능력 있고 참신한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적 지지를 유지 할 수 있고 개혁의 난제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명마의 눈물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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