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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을송(頌)

[강원=아시아뉴스통신] 이순철기자 송고시간 2017-11-11 18:03

강릉시민 함동식
가을이 깊어 간다. 아니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가을이 남아있다. 가을을 더 음미해 보고 싶은 욕망일까. 내 생각은 단풍의 붉은 상념속에 머물러 있다. 입동이 지났는데 무슨 가을 타령인가 하지만 그냥 가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아쉬워 하는 나태한 인간의 푸념이라 치부해 버리자.
 
가을의 모습은 여러 가지 이다. 먼저 가을은 아름다운 채색의 계절이다. 강릉시내에서 대관령을 바라보면 어느 때 쯤인가 대관령 머리꼭대기가 붉어 질 때가 있다.
 
그때야 비로서 가을을 실감한다. 눈이 부시도록 붉은 물결이 대관령을 모두 물들이고 밑자락까지 내려오면 이제 가을이 끝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원래 날씨가 추워지면 엽록소를 뿌리로 이동시켜 다음해를 기약한다. 천자문에 추수동장(秋收冬藏)이란 말이 있다.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 한다라는 말이니 예전부터 나무들이 천자문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무가 인간보다 더 지혜롭지 않은가.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봄에는 풀뿌리를 캐먹고 여름에는 보릿고개로 연명하던 이 땅의 민초들이야 풍성한 가을이 어찌 반갑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가을의 호사스러움은 악덕 지주와 탐관혹리들의 수탈을 불러왔으니 가을은 재앙의 계절이기도 했다.
 
갑오 동학농민운동 역시 계사년(癸巳年) 가을의 풍요로움을 부당하게 착취 당하자 이듬해 갑오년 정월 봉기 하였으니 가난한 농민들은 가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조정의 공식 문서에는 동학 농민군을 동학 비적이라는 뜻의 동비(東匪)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게 빼앗기고 도적떼로 몰린 심정이 오죽이나 했을까.
 
또 가을은 차가움과 냉혹함의 계절이다. 가을은 오행상 금(金)에 해당한다. 금은 성질이 차갑고 예리함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중국 고대 주(周)나라 때부터 형벌을 다루는 형관을 추관(秋官)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사형수를 대시수(待時囚)와 부대시수(不待時囚)로 나누었는데 봄과 여름은 만물에 생기가 가득한 계절이라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생기를 해친다고 하여 봄과 여름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가을이 절정에 이르는 추분까지 기다렸다가 형을 집행하였는데 이것을 대시형(待時刑)이라고 한다. 물론 추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집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를 부대시형(不待時刑)이라고 불렀다.
 
가을은 생기가 쇠하는 차가운 계절이면서 또한 이렇게 냉혹한 계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가을은 뭐니뭐니 해도 외로움의 계절인 것 같다. 얼마전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내 친구가 혼자 사는거나 결혼해서 둘이 사는거나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라고도 했다. 하기야 인간뿐 만 아니라 생명 가진 자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 말을 듣고 나니 탁문군(卓文君)의 백두음(白頭吟)이라는 시가 떠 올랐다.
 
중국 전한(前漢)시대 세기의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그의 처 탁문군의 이야기로 원래 사마상여는 이름없는 가난한 문사였다. 어느날 촉(蜀)땅의 거상 탁왕손의 연회에 초대되었는데 탁왕손에겐 과부가 되어 친정에 머무르고 있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탁문군이다. 사마상여는 말을 좀 더듬었지만 용모가 아름답고 글재주가 뛰어나며 악기연주와 노래를 잘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그 날 연회에서 봉구황(鳳求凰)이라는 곡을 연주하였다.
 
봉은 수컷을 황은 암컷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성에게 사랑을 구하는 그런 노래였다. 사마상여에게 반한 탁문군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게 되었는데 사마상여는 그 후 처가의 재력으로 유명한 문사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사마상여가 첩을 두려하자 탁문군은 서운한 마음에 백두음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듣자니 그대가 두 마음을 가졌다니 우리 사랑이 여기서 끝나는건가요(聞君有兩意 故來相決絶)”
 
근데 내 친구가 왜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했을까. 혹시 탁문군의 백두음을 읇조리고 있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든다.
 
미국의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가 1991년에 발표한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라는 곡이 있는데 가사 말 중에 “차가운 11월의 빗속에서 촛불을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 사랑을 지키기 어렵다”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에 영원한게 없어서 일까. 한없이 푸르름을 유지 할 것 같던 나뭇잎도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들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랑도 변하고 푸른 나뭇잎도 붉게 변한다. 그래서 가을은 참 외롭다.
 
또 하나의 가을의 모습은 처연(悽然)함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형부상서에까지 오른 조정의 고관이였다. 한 때 백거이는 구강군사마(九江郡司馬)로 좌천 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강가에 나갔다가 배안에서 들려오는 늙은 여인의 비파소리를 듣게 되었다.
 
원래 장안의 창기(唱妓)였는데 비파의 명인이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 미색이 쇠하자 장사꾼에게 시집가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늙은 창기의 비파소리를 청해 듣고 그녀에게 바치는 헌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비파행(琵琶行)이라는 장편의 시이다.
 
단풍잎과 갈대꽃이 가을바람에 쓸쓸하다고 했으니 아마 늦가을 지금쯤이 아니었을까. 시골로 쫒겨온 중년의 벼슬아치와 한 때 장안을 주름잡다 늙어 버린 창기는 술과 비파에 어우러져 지난날을 회상하며 푸른 적삼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가을날의 정취가 정말 쓸쓸하기도 하다.
 
늙은 여인의 화려했던 삶도 끝나가고 가을은 얼어붙은 겨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을은 곧잘 저물어 가는 인생과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가을을 처연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가을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 슬픈 회한속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은 냉혹함과 외로움과 처연함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외로우면 사랑을 한다고 하던가.
 
그래서 가을은 또 사랑의 계절이다. 당나라 희종 때 궁중에 한씨(韓氏)성을 가진 궁녀가 있었다.
 
이 궁녀가 너무 외로운 나머지 단풍잎에 글을 써서 물위에 흘려 보냈는데 장안에 살던 우우(于祐)라는 선비가 물위에 떠내려오는 단풍잎을 주워보고 연모의 정을 품다가 단풍잎에 답신을 띄워 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단풍잎이 중매쟁이였으니 이 홍엽량매(紅葉良媒)의 고사가 쓸쓸한 가을밤을 훈훈하게 해준다.
 
백거이는 임간난주소홍엽(林間暖酒燒紅葉)이라는 싯구절을 남겼다. 단풍잎을 태워 술을 데워 마신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풍류 넘치는 표현인가. 외로운 이는 단풍잎에 사랑의 시를 쓰고 인생의 처연함을 느끼는 이는 낙엽을 태워 술을 데워 마셔라.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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