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
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5:13-14)
1. 언제나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애쓴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나는 성령님을 까먹는다. 놓친다. 잊어버린다. 나 혼자인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 혼자인 것처럼 퍽 감정적이 되기도 한다. 성령님 언제나 내 안에, 곁에 함께 계심이 진리이건만 나는 어찌 그리 성령님을 안 계신분처럼 잊고 살아가곤 하는지 안타깝다.
그래도 나를 이해해주시고 다시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도록 생각나게 하신다. 목사로서 사역자로서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 것이 있다. 순수함이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찾아야 한다. 내 개인적 삶에 유익하니까 성령님을 찾지 않는다. 내 사역의 유익을 위해서만 찾지 않는다. 생명주신 동일한 무게의 사랑으로 그냥 나를 사랑하셔서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찾는다. 언제나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말을 걸고 그분을 생각하는 삶이 내 우선순위다.
2. 그래도 사역할 때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사역할 때도 성령님 동행하시므로 존중해드려야 한다. 또한 사역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님의 힘으로 해야 하니 더욱 성령님을 존중해드려야 하는 거다.
가령 목사님들은 찬양 인도도 자주 하신다. 나도 그렇다. 내가 찬양인도할 때 어떻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면서 준비할까? 인도할까? 이걸 참 중요하게 여긴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
3. 말은 쉽지만 첫 음을 맡기는 마음 상태,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이 가능해야 쉬워진다. 올해 개척 4년 차인 우리 교회 예배 찬양 인도를 내가 한다. 찬양부터가 예배의 시작이다. 보통 4-5곡, 많을 때 6-7곡 정도를 인도하는데, 중간에 2-3번 합심기도 하는 시간이 있다. 찬양과 기도 시간을 합쳐서 보통 40분에서 50분 정도 된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기는 찬양은 평상시 삶에서 준비가 더 중요하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면서 삶을 살다보면 다양한 채널들로 감동을 주시는 찬양이 있다.
4. 내가 먼저 부르지 않았는데 길을 걸어가다가 내 속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찬양이 있다. 때로는 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다가 잠에서 깼는데 여운이 남아서 떠오르는 찬양이 있다. 내가 어떤 분의 글을 읽다가 그분이 은혜받으셨다며 소개해주시는 찬양이 내게도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최근에는 운영중인 인터넷 카페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으신 분께서 댓글을 올려주셨다.
"목사님, 오늘 글을 읽고 감동이 되네요. 찬송가가 생각납니다. 이런 찬양이 떠오릅니다."
찬양이 생각난다시며 댓글로 올려주셨는데 그 찬양이 내게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기독교 방송이나 내가 평소 즐겨듣는 찬양들 가운데 그날따라 더욱 은혜가 되는 찬양들이 있다. 그 찬양들을 꼭 메모한다. 기록한다. 그리고 예배 전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콘티를 정한다.
5.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감동받은 찬양은 아닐 수 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한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거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다.
6.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 하는 것보다, 나는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긴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간들이 쌓여서 점검된다.
종종 내가 기타를 치면서 반주자 없이 찬양 인도할 때가 있다. 나는 원래, 아예, 전혀 못쳤었다. 지금도 여전히 못 치지만 그래도 부족함 속에서 기타 코드를 익혀서 찬양 인도를 한다. 내가 찬양 인도를 하고 싶어서 기타를 구입했을까? 놉, 아니다.
7. 하루는 내 목소리 말고 하나님을 무언가 악기 하나 배워서 기쁘게 불러드리고 싶었다. 그것도 많은 찬양이 아니다. 내가 우리 하나님께 불러드리고 싶은 찬양 한 곡을 악기 하나 배워서 불러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엔 오카리나 음색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 샀다. 리코오더 운지법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쉽게 원하던 친양을 연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찬양이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곡이다. 이 찬양을 오카리나로 불러드려서 하나님께 기쁨드리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구입해서 운지법을 배우고 불러드리는데 참 기뻐하시는 감동을 다시 내게 부어주신다.
8. 같은 이유로 그 찬양을 이번에는 기타로 연주하면서 불러드리고 싶었다. 오카리나는 연주하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기타로 반주하면서 내 목소리로 함께 찬양을 불러드리고 싶어서 구입한 거다. 연습한 거다.
왜 그리 좋은 찬양이 많은지 자꾸 발견하게 된다. 하나씩 코드를 연습해서 우리 하나님께 불러 드리고 싶어서 연습하고 연습한다. 그러다 보니 기타로 반주할 줄 아는 찬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정말 못친다. 다만 아직 우리 교회에서 기타는 내가 최선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내가 최선이지만 아직도 거문고 타는 소리가 난다. 여전히 코드를 잘못 짚어서 곤란함을 느낀다. 그래도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기면서 찬양 인도를 하니 성령님께서 많이 도와주신다.
9.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길 때 결국 목소리를 사용한다. 예배드리고자 강대상에 서면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한다. 의지한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조용히 마음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본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점검한다는 거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연다. 찬양을 시작한다.
10. 찬양 인도 쉽지 않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성령님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살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자.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드리는 찬양을 하자. 그러다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이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라!"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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