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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사진제공=하나교회) |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 4:10)
다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라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듯이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날(헤메라스)은 금식일과 안식일, 하루이다. 달(메나스)은 매월 지키는 월삭이 있고 달의 반복적인 운행과 관련된 절기들이 있다. 정월로서 추수가 시작되는 아빕월, 7월, 8월의 에다님월과 불월도 있다. 절기(카이루스)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 3대 절기가 있다. 해(에니아우투스)는 안식년과 안식년의 안식년인 희년이 있다.
이런 시간에 매여 있고 순서에 잡혀있으면 늦게 온 사람은 죽어도 먼저 온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시간이 정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와 청년과 장년과 노년의 지혜가 있다. 하지만 율법의 저주는 이 순서와 시간의 저주 아래에서 전진 할 수 없다. 이것을 뛰어넘어야 다르게 살 수 있다. 지도자는 시간을 정해서 살지만 시간을 세워서 쓰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깨어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죽음의 시간을 영원한 시간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저주의 시간이 아니라 축복의 시간으로 살려면 율법의 정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1)
이 수고는 해산의 수고를 말하는데 율법의 정신은 해산의 수고로, 생명을 낳고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다. 이 율법의 정신을 정리한 것이 로마서 7장 12절 말씀이다.
‘이로 보건데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모세의 율법의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지키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해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의 정신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저주이다. 좋은 건데 좋은 것을 알지 못하고 나쁜 것으로 사용한다. 약인데 독이 된다. 생명을 살리는 빛인데 생명을 말라 죽인다. 물인데 지나쳐서, 마실 수 없는 흙탕이물인 홍수가 된다.
죽이는 율법이 아니라 살리는 율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수고’를 깨달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13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
갈라디아서 4:8~11, 민수기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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