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
[겉보기의 화려함에 속지 말라]
(이사야 19:1-15)
1. 이집트의 화려함
폭군인 앗시리아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약소국인 유다로서는 누군가 의지할 존재가 있어야 했다.
눈치를 보던 유다는 이집트를 의지할 대상으로 선택하려 했다.
끝없이 흐르는 나일강의 웅장함,
나일강이 젖줄이 되어 생산되는 풍부한 곡식들,
너무나 큰 영토,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왕과 귀족들 등을 보면서
의지해도 좋을 나라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토록 빈틈없이 화려하고 웅장한 나라라면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속은 전혀 달랐다.
이집트는 어떤 나라였을까?
2. 이집트의 실상
이집트를 두고 하나님이 경고의 말씀을 주신다.
이집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다가 이집트를 의지했기 때문에
유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실상은 세 가지 면에서의 파탄이다.
첫째, 자중지란
(사 19:2, 새번역)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부추겨서, 서로 맞서 싸우게 하겠다. 형제와 형제가, 이웃과 이웃이, 성읍과 성읍이, 왕권과 왕권이, 서로 싸우게 하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집트는
내분이 일어나고 내란이 일어나 자멸할 것이다.
헛된 계획만 세우고 우상만 의지하다가 몰락할 것이다.
둘째, 자연재해로 파탄나는 경제
(사 19:5-8, 새번역) [5] 나일 강이 마를 것이다. 강바닥이 바싹 마를 것이다. [6] 강에서는 악취가 나며, 이집트 시냇물의 물 깊이가 얕아져 마르겠고, 파피루스와 갈대도 시들어 버릴 것이다. [7] 나일 강 가와 어귀의 풀밭과 강변에 심은 모든 나무가 말라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8] 나일 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슬퍼하며 통곡하고,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모든 낚시꾼과 강에 그물을 치는 사람들이 잡히는 것이 없어서 고달파 할 것이다.
나일강이 이집트의 젖줄인데
나일강이 말라 버릴 것이다.
나일강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가뭄과 함께 경제가 파탄나고 말 것이다.
셋째, 정치붕괴
(사 19:11-13, 새번역) [11] 소안의 지도자인 너희는 어리석기만 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바로의 참모인 너희도 어리석은 제안만을 하고 있으니, 어찌 바로에게 너희가 옛 현인들과 옛 왕들의 후예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12] 이집트의 임금아, 너를 섬기는 현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을 시켜서, 만군의 주님께서 이집트에 대하여 무엇을 계획하셨는지를 알게 하여 너에게 보이라고 하여라. [13] 소안의 지도자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멤피스의 지도자들은 제 꾀에 속고 있다. 이집트의 주춧돌들인 지파들이 이집트를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
이런 난국 속에서 지혜로운 지도자마저 실종되어
이집트는 더 이상 희맘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지혜와 힘을 자랑하던 지도자들인데
위기가 찾아오자 실상은 자기 운명조차 모르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집트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유다가 결코 의지할 가치가 없고
결코 의지해서는 안 되는
허약하고 내실 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부패하고 타락하고
온갖 위험에 노출되었으나 대책은 없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라를 의지하려 했으니
유다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3.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집트의 겉보기의 화려함에 속은 유다를
어리석다고 욕할 수 있을까?
이 시대는 결코 유다를 욕할 수 없다.
겉보기의 화려함이 전부인 듯
세상 모든 사람이 겉보기에 집착하는 듯 하다.
더 예쁘고 더 멋있고 더 부유하고
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또 추구한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비싼 가방,
화려한 옷 등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의 내부는
온갖 악취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들의 악취를 겉의 화려함으로 덮는 것이다.
그 현상은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가 되어
교회를 선택할 때 우선 좋은 위치를 점유하고
화려한 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를 선택한다.
그 안에 있는 목사가 멋진 옷을 입고
거룩한 척 하면서 권위를 드러내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교육 프로그램들도 그럴싸 해보이는 것들이 많다.
자녀들의 신앙도 좋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속아서 그 교회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의지할 것들이 되지 못한다.
그 내부로 깊이 들여다 보면
자중지란, 재정비리, 악한 꾀들로 가득찬
부패한 교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화려한 건물과 덩치와 숫자로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타락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겉보기의 화려함에 속아
그 화려함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속의 타락과 더러움과 악취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망치게 되는 비참하고 어리석은 결과를 만날 것이다.
4. 나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시도를 했다.
멋 모르고 했던 시도였다.
신대원 2학년의 전도사가
운영하던 작은 학원의 교실 한칸에서 교회를 개척했으니,
얼마나 세상 물정과 교계 물정을 몰랐던 일이었는지 싶다.
밖에는 교회 간판 하나 없고
내부에 들어가서도 간판이 없는
그저 학원일 뿐인 그 곳이 교회라니,
그런 교회에 누가 찾아오겠는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누가 찾아오든 아니든 상관없이
교회의 본질이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말씀 하나에만 집중하고
함께 말씀에 삶을 걸고 살아가도록 돕는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교회가 되어간다면
구석구석의 갈급한 사람들이 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여기저기에서 7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기적이었다.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보다
말씀에만 집중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부터 생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에만 우선 집중했다.
내가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그 말씀에 삶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교인들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우선 내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싶었다.
그런데 신대원 다니며 레포트에 시험에 정신이 없었고,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터지는 상황이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그 말씀에 삶을 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바쁘고 분주한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신앙인으로 죽지 않고 살려면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토록 초라한 교회에 사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고 보람도 느껴졌다.
그런데 교회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분의 신앙이 회복되는 일이 생겼는데
그 분이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닐 분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 교회를 신천지라고 그 분에게 말한 목사가 있었고
결국 그 교인이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개척 멤버였던 집사님 부부가
내 설교를 오해하고서 교회를 떠나셨다.
그리고 교인들이 교회를 거의 다 떠나고
3명이 남는 아픔까지 겪었다.
이 모든 아픔을 겪으면서 너무 아프고 슬펐다.
그런데 절망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화려하지 않은 교회니
이런저런 일을 겪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다.
거의 20명 가까운 인원이 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3명의 성도와 예배를 드리는
그 초라한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사실 매우 낙심이 되었다.
그 사실 자체가 낙심되었다기 보다는
'화려함이 아니면 교회는 설 수 없는 것인가?'
'말씀 하나로만 담백하게 목회하면 목회는 망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나는 아는 것이 말씀 뿐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화려함으로 목회하는 법을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다.
말씀 하나에 삶을 거는 것외에는
내가 신앙과 목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놀랍게도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거의 하루도 말씀 묵상을 빠트리지 않았고
나의 점점 말씀에만 운명을 거는 삶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담담히 말씀에 삶을 거는 교회를
3명의 성도들과 함께 다시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분 한분 말씀에 갈급한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지금의 말씀의빛교회를 이루었다.
서울 천호동에 말씀의빛교회를 세우고
인테리어를 끝내고 들어가서 첫 예배를 드리던 날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카페 분위기로 예쁘게 꾸며진 예배당에 들어가
앉아서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이런 예쁜 예배당이 서울에 생기다니
정말 기적과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 저는 이런 예쁜 예배당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다만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교회가 되기만 소원합니다.
이 예쁜 예배당에서 오직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나중에 예배당이 없어지더라도
말씀의 사람들만 세워진다면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충 이런 기도를 했었고
예쁜 예배당 때문이 아니라
말씀 하나로 갈급한 영혼들을 만나서
교회를 이루었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예배당이 얼마나 예쁘고 화려하고
얼마나 목이 좋은 곳에 있는지가
교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면
그건 장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를 세워서 장사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장사할 거면 학원을 계속했어야지 싶다.
돈에 의지하고 힘에 의지하고
힘있고 돈 있는 사람에게 의지할 것이면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목회 뿐 아니라 신앙인의 기본적인 태도는 언제나
돈있고 힘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란,
말씀 하나에 삶을 거는 태도에서 온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다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에 삶을 거는 시간을
하루하루 살아왔을 뿐인데,
놀랍게도 화려한 이집트를 의지하는 마음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본다.
아직도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말씀을 치열하게 묵상한다.
수십년을 묵상했지만
여전히 말씀을 치열하게 묵상한다.
여전히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의지하려는
연약하고 악한 마음이 조금씩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도 모르게 헛된 것들을 의지하여 망하는
어리석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묵상하는 태도를 가볍게 만드는 순간,
그래서 삶의 태도가 느슨해지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화려함에 속고
부유함과 거대함에 속고,
힘과 권력에 속는 어리석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루하루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이 나의 삶을 이끄는 행복을
단순하게 누려가기만 할 뿐인데
이런 복된 변화를 함께 덤으로 누려가고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이런 변화의 행복,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화려함에 속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행복을
성도들과 함께 하루하루 누려가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