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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말도 안 되는 비전'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8-05 22:33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말도 안 되는 비전]

(이사야 19:16-25)

1. 반전

자중지란, 경제파탄, 정치붕괴 등으로 
파멸의 길로 갈 이집트에 대한 예언이 계속된다.

(사 19:16-17, 새번역) [16] 그 날이 오면, 이집트 사람이 마치 겁 많은 여인처럼 되어, 만군의 주님께서 그들 위에 팔을 펴서 휘두르시며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서, 두려워하며 떨 것이다. [17] 이집트 사람은 유다 땅을 무서워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그들을 치려고 세우신 계획을 상기할 때마다 '유다'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 무서워할 것이다.

이제 이집트는 완전히 멸망할 것 같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나라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다.

(사 19:18, 22, 새번역) [18] 그 날이 오면, 이집트 땅의 다섯 성읍에서는 사람들이 가나안 말을 하며, 만군의 주님만을 섬기기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 다섯 성읍 가운데서 한 성읍은 '멸망의 성읍'이라고 불릴 것이다. [22] 주님께서 이집트를 치시겠으나, 치시고 나서는 곧바로 어루만져 낫게 하실 것이므로,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실 것이다.

이집트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원인과 결과가 없이 곧바로 
'그 날이 오면' 이집트과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말한다. 

무슨 일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집트 같은 나라는 망해야 하는 것 아닐까?

2. 더 큰 반전

망해야 할 이집트가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는데,
더 큰 반전도 일어난다.

(사 19:23,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앗시리아도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집트가 회복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수많은 나라들을 괴롭히고 빼앗고 약탈한 나라 앗시리아는
영원히 망해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는 흥하고 
이방 나라들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비전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궁극적 비전은 
원수는 망하고 나는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원수조차도 회복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다.

그래서 원수를 만들고 그 원수를 향해 저주하고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것은
결코 기독교의 모습일 수 없다.

원수마저 회복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도 안 되는 놀라운 비전이다.

이 비전이 놀라운 이유는,
괴롭혔던 나라들과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가 
함께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 19:25, 새번역)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특별한 사랑과 특별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산산히 부서진다.

그 날이 되면 이집트도 앗시리아도 이스라엘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원수였던 자들도 나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 왜?

이해하기 어렵다.
왜 우상숭배자들인 이방 나라들을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복을 주실까?

그들은 완전히 망하게 해서 
더 이상 우상 숭배자가 없도록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인 이스라엘만 살려서
그 나라를 번성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원수는 망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나는 살려서 흥하게 하고 
부유하고 강성해지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다.
우상숭배자들의 나라를 영원히 멸망시켜야 한다면
당연히 이스라엘도 망해야 한다.
그들도 수없이 많은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 믿는, 또는 하나님을 이상하게 믿는
나의 원수들이 심판받아 망해야 한다면
나도 심판받아 망할 수밖에 없다.
나도 하나님을 안 믿을 때가 있었고,
하나님을 이상하게 믿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하나님을 온전히 올바르게 믿는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 나라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우상숭배자들이었고
원수 뿐 아니라 나도 우상숭배자다.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하게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인 이방 나라들도, 나의 원수들도 
마침내 구원을 받아야 하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나도 우상숭배자이고 
나도 누군가의 원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죄인이어서 언제든 나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서 살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창조는 
우상숭배자를 예배자 되게 하는 일이라고 
토저가 말했다. 

나만이 아니라 나의 원수들도,
하나님의 백성뿐 아니라 이방나라들도 
회복시켜 주님을 예배하도록 만드시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창조가 아닌가?

신자란 이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믿고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4. 나는?

원수를 받아들이고 용납하는 경험이 
신자에게 너무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원수를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는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다.
나 자신이 원수요 용납을 받을 수 없는 자였는데,
하나님이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셔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참으로 아는 것에 그 비결이 있다.

그래서 신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용납하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용납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진다면
신자로서의 삶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더구나 혐오와 배제에 빠져들고 있다면
그건 심각한 배교의 상태로 접어든 것이라 봐야 한다.
죽을 죄인, 우상숭배자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혔던 자가 
용납과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고 
새 창조의 삶을 누려가는 신자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배제한다는 일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옳지 않았다.
너무나 이기적인 그 사람이 싫었다.

예전 같으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많았고 
그 사람들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사람이 안쓰럽고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했다.
나에겐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람의 단점만 보이던 나의 시각이 달라지고 
그 사람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 뿐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한 사람씩 늘어났다.

사람을 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임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은
마음에 안 드는 그 사람이 나의 마음에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앞에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나의 내면의 가치들이 달라지고 
사람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가는 것을 본다.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아야지' 라는 결심을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나는 그저 말씀을 통해서 
나의 죄인 됨을 계속 발견하고 깨달을 뿐이고 
그래서 주의 긍휼에 계속 기댈 뿐이다.
그것 한 가지만 할 뿐인 것 같은데
아주 조금씩 나는 사람을 용납하는 마음이 커져온 것이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악한 나 자신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괜찮다.
나는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갈 것이고 
나의 죄인 됨을 더 깊이 발견하게 될 것이고,
말씀 앞에서 매일 아주 조금씩 
하나님의 시각을 배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한 가지만 하면 
나의 모든 삶이 신자다운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이지만 성숙해 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다들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방향을 바르게 잡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말씀에 삶을 거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그 말씀에 나의 삶을 다 걸고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능력과 나의 지혜와 나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성품이
나를 변화시켜가는 경험을 누려가게 될 것이다.

말씀이 다 한다.
말씀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죄인인 나는 오직 말씀 하나에
나의 삶을 다 거는 걸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주께서 나와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시기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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