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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켈러한인제일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사진제공=켈러한인제일침례교회) |
믿는 자가 마땅히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우리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말씀: 롬 12:1-2
제목: 믿는자의 합당한 예배, 삶
오늘은 “믿는 자의 합당한 예배,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예배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한 문장으로 한번 말씀해 보십시요. 저는 한 문장으로 예배를 정의한다면,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믿는자의 삶”이라 정의할겁니다.
예배는 반드시 삶전체를 포함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나 공예배만을 예배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 성경적인 예배의 정의가 아닙니다. 예배는 주일예배나 공적인 예배를 포함한 삶전체가 예배이어야만 합니다. 물론, 주일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일예배는 한주의 예배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점이 무너지면, 6일에서의 삶이 결코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반대로, 6일동안의 삶의 예배가 되지 않는다면, 주일예배나 교회에서 공적인 예배 또한 바른 예배가 결단코 될수가 없습니다.
이 예배의 정의는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예배에 대한 정의입니다. 오늘 말씀 1절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몸전체를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몸전체를 산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삶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고, 영적인 예배는 합당한 예배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누구에게 합당한 예배라는 거죠? 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 합당하게 즉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자가 마땅히 드려야 할 가장 합당한 예배는 바로 우리의 삶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2장 1절은 ‘그러므로’ 로 시작됩니다. 1절말씀에 있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단어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부분의 내용이 원인이며, 뒷부분의 내용이 결과가 나올때 쓰이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면, 앞부분이 어떤 내용일까요? 그저 앞구절만 국한되지 않고 11장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남은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이름만 이스라엘로 불려지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중에서 소수의 남은자들을 택하시고, 그 남은자를 구원하셔서 남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남은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반드시 12장 1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 즉 삶전체를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남은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이 바로 자기의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삶으로 예배드리는자들이 바로 11장에서 이야기하는 “남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남은자들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1장까지 흐름속에서 이 뜻을 해석한다면, 이 구절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남은자들은 반드시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구원받은자들은 이 삶의 예배를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option이 아니라, 반드시 드려야 되는,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드릴수 밖에 없는 필수적인 예배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예배가 없는자들은 그들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 믿음이 가짜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배의 삶은 어떤 삶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두가지 종류의 삶을 의미합니다.
첫번째로 예배의 삶은 구별된 삶입니다.
2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구원받은자가 드려야할 삶의 예배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구별은 바로 세상이 가지고 있는 죄와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거룩함이라고 합니다. 우리 믿는 자는 죄와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근본적인 죄의 시작은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려는 것으로부터 기인됩니다. 사단이 하와에서 선악과 열매를 주면서 유혹했던 내용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될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었던 자리에 인간이 주인되게 된다는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감으로 인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죄”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이 근본적인 죄라고 했습니다.
이 근본적인 죄로부터 기인된것들이 바로 “자범죄”라고 불리는 “죄악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악들로부터 구별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되는 것으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이 주인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과 구별되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새상과 구별된다는 것은 이 세상과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속에서 살면서 그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삶의 출발과 목적이 바로 하나님이 될때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 구별된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돈을 벌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와서 예배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교회 봉사를 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가족들을 섬겨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이 되어야먄 합니다 .
왜냐하면, 그 이유가 바로 구별된 삶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구별된 삶이 바로 우리 믿는자가 드려야 할 삶의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예배의 삶은 분별하는 삶입니다. 2절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든 상황속에서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가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초점을 맞춰 신앙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성경은 마음에 초점을 맞춰야지만 변화를 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부터 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바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정확하게 알수가 없습니다. 자신만이 정확하게 알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팍해지고, 무뎌지고, 아무런 감격과 감사와 은혜가 없는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감격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있어야 바르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수가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되지 않기에 수동태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기도할때 변화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여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마음이 없는 행동이 변화받아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바르게 읽고 공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믿는자는 예배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아니, 살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여전히 우리 마음으로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1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 예배의 삶을 살도록 하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반드시 예배의 삶을 살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삶이 삶이 예배된 삶이라고 했나요? 외우기 쉽게 “별”난 삶입니다. 두가지 별난 삶입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삶이 다른 별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첫번째 구별된 삶이고 두번째는 바로 분별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쉽게 정리하여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구원 받은 여러분, 세상의 죄와 구별되기 위해 하나님이 주인되는 삶을 사십시요. 그리고,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마음을 변화를 받아 말씀을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여러분들이 마땅히 드릴수 밖에 없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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