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해 열린 동학 보은취회 "동학 소풍가는 길" 기념행사 준비모습.(사진제공=삶결두레 아사달 카페) |
충북 보은에서 동학 보은취회 122주년 기념행사가 다음달 2일부터 8일까지 7일간 펼쳐진다.
보은취회는 19세기 말 외세에 민족의 자주권이 침탈당하고 탐관오리의 폭정에 시달리던 때에 동학 민중들이 지난 1893년 3월11일(음) 보은 장내리에 모여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깃발을 내걸고 열었던 집회다.
특히 보은취회는 그 동안의 작은 민란과 달리 동학 2대 도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주도하는 튼튼한 조직과 이념을 바탕으로 뭉쳐 사회변혁의 깃발을 높이 든 민족사 최초·최대의 민중집회로서 1894년 동학혁명의 모태가 됐다.
18년째 보은취회 기념행사를 진행해온 보은취회기념행사준비위원회 박달한 대표는 “취회(聚會)는 모이고 흩어짐이 자유로운 모임을 뜻한다. 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모였다 흩어지는 민중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보은취회 기념행사는 박 대표가 지난 1998년 문화의 불모지 보은에서 처음 마련한 4331솟대장승굿 ‘하늘이 열리고 이 땅에 지킴이가 서다’라는 작은 행사로부터 시작됐다.
대부분의 시민운동이 그렇듯 재력을 가진 기관과 단체의 참여가 저조한 탓에 보은취회 기념행사는 뜻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돼 왔다.
그만큼 열악하고 힘들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접주’라는 동학도인의 호칭을 불러주며 더욱 꿋꿋이 뭉쳐 행사를 치러내고 있다. 이들은 ‘취회’라는 열린 공간에서 스스로 일을 꾸미고 꾸리며 즐긴다.
지난해에는 동학혁명 12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동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4600여 명의 인파들이 모였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행사비용을 자발적으로 펀딩 받기도 했다.
이들이 추진하는 행사의 정신은 동학혁명의 근본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人乃天’사상,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를 바탕으로 만민 평등을 꿈꾼다. 올해 주제는 ‘이 땅에서 밥 한 그릇’이다.
7일간 보은 북실의 동학기념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행사의 백미는 ‘들살이’다. 120여년전 그때 그 모습과 그 생각을 이으려는 열망으로 텐트 등을 이용해 노숙을 하며 산책과 명상을 한다. 다음달 5일과 6일에는 들밥정지간과 동학 주막도 열린다.
시작하는 날인 다음달 2일 참가자들은 청수모심, 100배, 명상, 청수마시기 등 동학의 기본 의식을 통해 참가자들 간의 자유로운 인사 이어가기를 하며 행사를 연다.
무엇보다 청소년 행사가 풍성하다. 다음달 5일 청년백일학교와 청년걸음이 주관하는 청소년토크쇼가 열린다. 이 자리는 동학 정신을 기반으로 한 청년들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형성, 유지, 발전시켜 새로운 청년문화을 만들고자 한다.
토크쇼에 이어 지난해부터 새로운 붐을 일으킨 청소년락(樂)풍류마당이 열린다.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들살이를 하며 동학을 주제로 한 음악, 퍼포먼스, 연극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으로 장기를 뽐내고 시, 서, 예, 학 등으로 참여한다.
특히 순천사랑어린배움터와 광주빛담예술학교의 학생 20여명이 원주를 출발해 보은 행사장까지 걸어오는 동학 순례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120여년전의 동학 민중정신이 오늘날의 청소년에게서 되살아나 함께 어울리고 함께 놀며 새로운 배움 마당을 펼치는 이들을 통해 보은동학의 의미와 미래를 새길 수 있다.
![]() |
지난해 열린 동학 보은취회 기념행사 주제공연의 한 장면.(사진제공=삶결두레 아사달 카페) |
이번 행사의 주제공연격인 역사맞이굿은 다음달 6일 극단꼭두광대가 맡았다. 이들은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전체를 하나의 공연장으로 활용하며 전문 배우들과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연희자인 동시에 관람객이 돼 정화수의례, 위령제례, 밥 모심, 풍물굿, 붓사위퍼포먼스를 재현하고 그 기운을 현재화하는 멋진 공연을 준비했다.
이어 15명의 여류 동학소설작가와 나누는 동학이야기 시간에 여성 동학인에 대한 재조명과 검무가 펼쳐지며 홍익마당에서 짚풀공예, 전통매듭, 잡화 시장이 열린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절망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보은지역의 동학 유적지를 순례한다. 보은군에는 취회가 열렸던 장내리와 피맺힌 북실전투지 등 동학관련 유적이 많이 있다.
보은취회 기념행사는 이제 전국 각지에서 청년, 장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함께 머물고 즐기다가 스스로 흩어지며 새 미래를 꿈꿀 것이다.
외롭고 힘들게 18년 동안 기념행사를 이어온 박 대표가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놀러와서 같이 밥 한번 먹어유”라며 씨익 웃는다. 그 웃음이 바로 동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