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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미 칼럼] 사람은 여운은, 눈보다 ‘귀’로 남기는 것 <목소리 편>

[부산=아시아뉴스통신] 윤민영기자 송고시간 2017-05-30 15:09

TBN 창원교통방송 '차차차' MC로 활약 중인 정나미 김해 드림스피치 아카데미 원장./아시아뉴스통신 DB

2009년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한창 MBC 리포터로 활동 할 때라 조쉬하트넷과 기무라타쿠야, 이병헌 등 멋진 배우들과 방송을 하게 됐다.

그런데 촬영을 마치고 나서 계속 내 기억을 맴도는 사람은 이병헌이었다. 이병헌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목소리가 하루 종일 잘 때까지 내 귀에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내 귀에 캔디’라는 노래 제목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그토록 달콤하고 촉촉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자꾸 듣고 싶은 그리움(?)마저 들게 했다.

나는 이병헌의 외모, 그러니까 시각적인 매력보다는 청각적인 여운에 매료된 것이다.

자꾸 떠오르는 사람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여고에 다녔던 나는 주변 학교의 남학생들 ‘대면식’을 빙자한 단체 미팅을 몇 번 했었다. 그런데 항상 친구들은 대면식 전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너는 말을 많이 하지마”라고.

아니, 수다 떠는 걸 최고의 낙으로 여기는 나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건 그냥 거기서 빠지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그런데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성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는 아주 걸걸하고 허스키한 쇳소리가 나서 마치 ‘남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깬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목소리는 나의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됐다.

그래도 나는 ‘여배우’가 꿈이었기에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물론 여기서도 나의 목소리는 특별하기로 소문나서 ‘정신병자’, ‘웃기는 여자’ 역할, 즉 남들이 꺼리는 배역은 전부 내 몫이었다.

문제는, 내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딱 그뿐이었다. 배우에게 한 가지 이미지가 굳혀진다는 건, 사실 절망적인 일이다. 나도 비련의 여주인공을 할 수 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내게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爾(이)’에서 연산군의 애첩인 ‘장녹수’의 배역이 주어졌다. 내 걸걸한 목소리로 희대의 요부, 장녹수를 표현해야하다니...

그때만 해도 ‘장녹수’ 하면 이미숙, 박지영 등 여성스러움의 극치인 여배우들이 떠오르는 시절이었다. 요즘 말로 ‘멘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에 ‘웃긴 여자’ 이미지를 깨야했다. 없는 교태 있는 교태 다 짜내며 정말 눈물 나는 연습을 했다.

싼티 나는 교태가 아닌, 치명적이고 고급스러운 교태를 내기 위해서는 목이 아니라 배를 이용한 목소리를 내야했다.

그렇게 공연을 3일 정도 앞두고, 나는 연출의 얼굴이 밝아진 걸 봤다. 내가 진짜 녹수 같아 보였다는 거다. 정말 신기했다. 호흡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나는 무대 위에서 제대로 녹수에 빙의할 수 있었다.

그 때 이후로 호흡의 매력에 빠져 지금의 목소리를 갖게 됐다. 요즘도 행사장에 가면, 감사하게도 “목소리가 정말 좋아요”라며 말을 걸어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사실은 예쁘다는 말이 더 좋지만. ‘목소리는 바뀔 수 없다’, ‘바뀌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목소리가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이건 어쩔 수 없겠죠?” 단언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누구나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나 역시 호흡부터 발성까지 몸통이 힘들어 눈물까지 흘리며 연습했다.

‘동굴 목소리’의 대표주자인 배우 김명민 씨도 본인의 역할에 따라 목소리 트레이닝을 한다고 들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위축돼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공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목소리는 ‘제 2의 관상’이라고 한다. 면접을 볼 때도 나의 열정과 입사 의지는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 방송인들을 보면, 외모보다는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시청자들과 소통하지 않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도 확신에 찬 목소리, 힘 있는 목소리로 유권자들에게 이야기 한다. 제일 중요한 ‘신뢰감’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은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목소리 38%, 말의 내용은 7%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는 대부분 말의 내용에 치중한 나머지, 자세와 목소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전달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제부터 ‘목소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입을 닫지 말고, 더 나은 목소리를 위해 입을 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좋은 목소리를 만들기 위한 팁’을 몇 가지 소개한다. 먼저 복식호흡을 이용한 발성으로 깊이 있고 단단한 소리를 만든다. 또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내보면, 눈에 띄게 음색이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는 다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내 음성을 녹음해서 들어봐라. 마음에 안들 것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수없이 반복하면, 처음에는 바뀌지 않는 것 같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단비처럼 사람들의 귀를 촉촉하게 적시는 목소리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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