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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동서독의 물류를 연결하던 도시 헬름슈테트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7-09-18 11:59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구 동독 지역인 헬름슈테트로 들어가기 앞서 길가에서.(사진=강명구)

나는 단순히 달리는 행위 하나로도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이야기하는 뻔뻔함을 갖추고 있다. 나는 달리기로 세계 최고의 대서사시를 쓰겠다고 나선 사람이고 인류 최대의 무대에서 전위예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목소리로 하는 나의 노래는 음정 박자도 안 맞고 고음도 안 올라가지만 내 몸 전체로 하는 나의 평화의 노래는 최고의 고음을 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나는 꿈을 꿀 것이다 내가 지나가는 이 길이 이제 더 이상 비자와 여권 없이도 아무라도 지나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이제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 헤이그를 출발한지 보름이 넘었다. 하루하루를 이렇게 치열하게 보낼 수 있는 나의 육신과 영혼에 감사한다. 나의 몸은 전에 비할 바 없이 강건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구 동독의 시설물로 보이는 건물 입구에 ‘주차금지! 개조심’ 등의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사진=강명구)

헬름슈테트는 통일 전 동서를 연결하는 큰 물류기지가 있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파주시 같은 도시이다. 파주시는 그나마 개성공단을 오고가던 물류마저도 끊긴지 오래되었다. 통일 후 이곳에는 분단 박물관이 세워졌고, 국경의 흔적은 그대로 보존되어 역사적 사료가 되었다. 고속도로상의 헬름슈테트(서독)와 마리엔본(동독) 국경통제소는 70%의 화물과 사람이 통과하던 최대의 관문이다.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 등으로 이뤄진 국경 바로 옆에 우리의 민통선 마을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헬름슈테트를 벗어나면 옛 동독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동서독을 가르던 국경을 넘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평화마라톤의 목적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달리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없어졌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깊다. 독일이 하면 우리도 한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으면 우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독일이 통일을 이루어 냈으면 우리도 통일을 이루어내고야 말 것이다.
 
구 동독 지역에 비스마르크 이전에 지었을 집들에서 수리도 안된채 사람들이 살고 있다.(사진=강명구)

철책선과 콘크리트 장벽은 거의 30년 전에 없어졌어도 헬름슈테트를 조금 벗어나니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확 바뀐다. 같은 나라인데 이제는 국경선도 없는데 무엇인가 아직도 갈라놓은 듯한 채색이 선명했다. 거의 하루 종일 십여 개의 마을을 지나오도록 새로 지은 집은 손꼽을 정도였고, 비스마르크 이전에나 지었을 집들은 수리도 안 된 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을의 활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많은 마을을 지나오도록 점심 먹을 식당을 찾지 못해 점심을 비상식량으로 요기나 했어야했다는 거다.

거의 200년 동안 독일은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여왔다. 독일인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형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314개의 연방국가로 분할되어있었다. 1806년 나폴레옹 군대가 진입해 들어올 때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구 동독 헬름슈테트 지역에 활쏘는 구역을 표시하는 듯한 팻말이 세워져 있다.(사진=강명구)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고, 프랑스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은 독일 시민혁명을 이끌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시대의 큰 문제들은 연설과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며 애국과 통일의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억압했다. 마침내 프랑스 전쟁을 도발하여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아내며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통일이 선포되었다. 

19세기 독일의 주요 과제는 자유와 통일이었다. 당시 유럽열강들은 하나로 통일된 독일이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무렵 독일이 통일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리스트였다. 그는 독일의 통일은 전쟁이나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라 경제적인 통일부터 점진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각 연방국가에 지불하는 관세는 경제발전에 큰 장애물이었다. 독일의 경제 통합은 눈 내리는 겨울 쌓인 눈 밑에서 새싹이 돋듯이 돋아났고 끝내 그것은 봄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철도망이 몸의 실핏줄처럼 독일의 곳곳을 연결하게 되었다.
 
구 동독 지역 헬름슈테트 대학교로 쓰였을 법한 건물 앞에 독수리 상이 세워져 있다.(사진=강명구)

독일은 뒤늦게 등장하였지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구와. 국민총생산액, 철강, 철도의 총 길이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를 능가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자질향상을 시키는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 특이하다. 교육은 의무이자 권리였기 때문에 무상이었으며 학교를 가지 않으면 오히려 벌금을 내야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에 항복하고 전쟁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빌헬름 3세는 가난하기에 더욱 교육은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한나라가 교육을 실시해서 더욱 가난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나라가 망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 때 그는 현대식 대학도 짓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교육과 철학 과학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럽에서 현대적 의미의 대학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 국민의 교육은 자질 높은 국민을 배양했고 대학은 창조와 발명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후발주자가 선진국을 따라잡는 힘이 되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을 만들었다.
 
바쁘게 지나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비스마르크로 추정되는 동상이 길가에 서있다.(사진=강명구)

철혈제상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할 때까지 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통일 후에는 마치 딴 사람처럼 평화 애호가가 되었다. 그 평화는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빌헬름 1세가 운명한 후 후임 황제 프리드리히 3세도 3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빌헬름 1세의 손자 빌헬름 2세가 그 뒤를 이어 즉위했는데 할아버지보다 훨씬 멋진 카이사르의 수염을 길렀고 비스마르크보다 한층 더 자부심이 강한 젊은이였다. 젊은 황제와 독일 통일의 영웅 비스마르크는 사사건건 충돌하다가 마침내 민심을 잃은 비스마르크가 사임했다. 
 
이것이 독일의 첫 번째 통일이야기이다. 두 번째 통일 이야기는 베를린에 가서 자세히 하기로 한다. 전 유럽이 동서로 분단되어 있고 1949년 동서독이 따로 건국하여 국제적 상황이 아무런 가망이 없을 때 동서독 국민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은 누구도 억압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어떤 장벽이나 철책선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다. 1990년 10월 3일 41년 동안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독일이 또다시 통일을 이루었다.
 
북한 연백평야가 한 눈에 내려 보이는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 망향단./아시아뉴스통신=홍근진 기자

남북통일은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저녁 달빛 창가에서 목이 터져라 세레나데를 불러서 이루고야 말 운명적인 사랑이다. 남북통일은 오랜 기간 분단된 이질적인 것들을 한군데 버무려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담대한 도전이요 이 시대의 최고의 과제이기도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덮어가면서 따뜻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것을 다시 하나로 돌리는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나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이해하고 감싸고 나눔을 배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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