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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0-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기사입력 : 2017년 10월 13일 11시 07분

본지는 지난달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비엔나는 고전과 현대가 서로 부둥켜안고 왈츠를 추는 조화로운 도시다. 어느 분수앞.(사진=강명구)

도나우 강은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을 닮아 생기가 넘친다. 생기가 넘치는 것을 바라보면 시선을 타고 그대로 내 가슴에 전이된다. 어디선가 호른으로 시작되는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아침에 괼러스도르프를 출발한지 꼬박 한나절을 달리다 도나우 강변길로 들어섰다. 강을 마주하자 나는 댄스홀에 들어서서 적당한 파트너를 물색하는 눈으로 강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푸르고 생기 넘치는 강물은 주위의 모든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한참 강가를 따라 달리다 도나우 강을 반으로 나누는 20여km나 되는 긴 섬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 햇살이 좋은 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저쪽으로는 백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나를 놀라게 한다. 이 섬은 다뉴브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 만든 인공 섬이라고 한다.

그 마법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된 비엔나는 다시 찬란히 빛나는 진주 목걸이처럼 도나우 강을 장식한다. 프라하는 고전이 홀로 무대에서 단독공연을 펼치는 도시라면 비엔나는 고전과 현대가 서로 부둥켜안고 왈츠를 추는 조화로운 도시이다. 음악과 문학과 예술은 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살다 죽은 곳, 사랑과 실연을 나눈 곳, 환희와 고통을 겪은 곳, 성공과 좌절을 겪은 곳 그곳에서 시작한다. 도나우 강 기슭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말고도 모차르트, 하이든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이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도나우 강은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을 닮아 생기가 넘친다.(사진=강명구)

그날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생일 연회가 있었다. 왈츠의 선율이 생동감 있고 달콤하게 흐르는 가운데 씨씨는 그날의 주인공인 언니 헬레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15살의 호기심 많고 아리따운 소녀 씨씨는 미래의 형부이자 사촌오빠가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춤을 추는 동안 저만치서 말없이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프란츠 요제프가 어린 사촌 동생과 눈을 마주치자 사랑의 여신은 장난을 치고 말았다. 젊은 황제는 그녀를 보자 홀딱 사랑에 빠져 헬레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들고 있던 붉는 장미를 씨씨에게 건네고는 사람들 앞에서 제국의 황후가 될 사람이라고 선포를 해버리고 말았다. 씨씨는 프란츠 요제르와 손을 잡고 배를 타고 도나우 강을 따라 내려와 열렬한 환호 속에 빈에 도착하였다. 어린 황후는 174cm에 48kg, 50cm 허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이 남편의 사랑을 오래 사로잡지는 못했다.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이 흐르는 듯한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리에 있는 기마 동상.(사진=강명구)

씨씨는 바이에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랐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엄격한 궁정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서로의 다른 성장배경이 불화의 시작이 되었다. 게다가 젊은 황제에게는 다가올 재앙들이 서주를 연주하는 오래된 제국이 있었다.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딸을 낳자 양육권을 빼앗기고 그 딸은 얼마 안 있어 죽고 다시 딸을 낳고 빼앗기고 말았다. 나중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황후는 건강이 악화되어 폐결핵에 걸렸다.

병은 고쳤지만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괴한에 의해 송곳에 찔려 암살을 당하고 만다.’ 그녀에게 아주 짧은 사랑의 기쁨과 오랜 사랑의 슬픔을 안겨준 프란츠 요제프가 바로 나중에 세계 1차 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조약에 사인을 하고 군주제를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을 했던 사람이다. 씨씨 황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을 지닌 쇤브른 궁전이다. 참으로 민비의 운명과 너무도 흡사해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이다.
 
왈츠의 경쾌하고 달콤한 선율이 흐르는 듯한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리에 있는 장군 동상.(사진=강명구)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없듯이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2차 대전 때 미군들이 커피를 큰 대접에다 타 먹는 걸 보고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생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는 비엔나에서 유래하지만 그런 종류는 3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코마향 가득한 것은 ‘멜랑지’라 하고 진한 크림을 듬뿍 얹은 것은 ‘아인슈페너’를 주문해야 한다. 낭만의 상징 비엔나커피는 아이러니 하게도 오스만과의 전쟁의 산물이었다.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30만의 대군은 화약을 이용한 대포와 총으로 무장하고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진격해 왔다. 오스만 군은 거의 빈을 점령한 상태였지만 이 때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닥치고 군 보급품에 문제가 생긴 오스만 군은 철수를 했다. 이 때까지 유럽인들은 오스만을 야만의 이교도로만 취급했다.

철수한 오스만 군대의 막사에서 500포대의 커피가 발견되었다. 처음엔 낙타의 배설물로 알고 버리려던 것을 통역사가 그것이 바로 오스만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원두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커피 원두를 갈아 물에 끊인 터키식 커피는 너무 쓰고 진했다. 여기에 우유와 꿀을 넣어 부드러운 커피가 되니 유럽인들의 입맛에 꼭 맞았다. 비엔나커피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낳은 애정 없는 교제가 낳은 예쁜 사생아이다. 
 
도나우 강을 따라 왈츠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택 전경.(사진=강명구)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낳은 어여쁜 사생아는 하나 더 있다.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빵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빵의 원조가 프랑스로 알고 있다. 빈을 포위한 오스만군이 성 안으로 진입을 준비할 때 빵집 주인이 밀가루를 꺼내려 창고로 들어가다 오스만 군대의 공격개시 계획을 우연히 듣고 신고해 오스만군의 진입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훈장을 받은 빵집 주인은 이에 대한 답례로 오스만의 군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빵을 구워서 사람들에게 와작와작 씹어 먹도록 했다. 이것이 크루아상이다. 프랑스에 크루아상이 등장한 것은 루이 16세 때부터였다. 왕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의 공주로 프랑스에 시집간 후에도 이 빵 맛을 잊지 못해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도나우 강을 따라 왈츠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 전경.(사진=강명구)

언제라도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은 빈은 왈츠의 고향으로 불린다. 춤은 생크림이 가득한 커피 잔을 들고 사랑을 속삭이듯이 아주 은밀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알 수 없는 리듬에 맞춰 돌아가고 있던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왈츠는 멈추었고 광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1천만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야 총성을 멈추었다. 그중 60%는 민간인이었으면 2천5백만 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7백 5십만 명의 실종자와 포로가 생겼다.
 
빈에서 왈츠가 멈추는 순간은 대재앙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왈츠의 선율은 멈추었고 다시 한 번 대재앙이 찾아왔다. 나는 한반도에서 소주잔을 마주치며 ‘위하여’하며 지르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노래방의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길 달리면서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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