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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7-10-31 08:42

28-집 잃은 개와 15km 동행하다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달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세르비아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시골길에서 만난 마차의 모습.(사진=강명구)

세르비아에 대해서 흥미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당연히 세르비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유라시아대륙횡단 루트를 짜다가 루마니아로 통과하려니 루마니아에는 높은 산악지역이 많아서 할 수 없이 세르비아를 통과하게 되었다.

내가 테니스를 즐겨했으므로 노박 조코비치가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세르비아는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연합에서 받아주지 않는 나라이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보스니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자행한 인종말살 행위가 내가 아는 다였으니 차라리 산악지형인 루마니아를 통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무수히 많이 했다.

그러나 나그네의 발길 앞에는 돌부리만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조우하는 기쁨도 있다.
 
세르비아는 헝가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된 것 같았다.(사진=강명구)

어렵사리 국경을 넘으니 무대가 확 바뀐 것 같았다. 1막이 끝나고 2막으로 바뀐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서 긴장도 되었다. 집들은 오래되어 무너져 내려도 손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았고, 쓰레기더미는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떠돌아다니는 집 잃은 개들의 충혈된 눈동자는 언제 공격할지 모를 공포를 주었다. 사람살기도 벅차니 개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전이 할퀴고 간 상처는 여기저기 남아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것은 집 잃은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었다. 
 
아침에 ‘센타’라는 마을을 벗어날 무렵 누렁이 한 마리와 멀리서 눈이 마주친다.

집개들은 막 짖으며 사람에게 달려드는데 들개들은 경계를 하고 슬그머니 도망치는데 이 녀석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계속 나를 쫒아온다.

나는 슬그머니 셀카봉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 셀카봉은 호신용으로 그만이다.

저만치 쫒아오는 녀석의 눈은 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불안했으나 선한 눈동자였다. 전혀 공격을 할 그런 눈동자가 아니었다.
 
센타를 벗어날 무렵 친밀감을 표시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온 누렁이 한 마리.(사진=강명구)

그러나 나는 녀석이 쫒아오지 못하도록 몇 번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 꼬리를 내리며 멈칫거리고 돌아서 가면 다시 저만치서 쫒아온다.

녀석은 나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나와 함께 평화마라톤을 완주할 기세로 끈질기게 쫓아온다.

그러다 세퍼트처럼 큰놈이 이 녀석을 공격하자 내 쪽으로 달려오고 큰 녀석은 나를 보더니 발길을 돌려 사라져갔다.

이 때부터 녀석은 내 바로 옆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쫒아온다. 나를 쫒아오면서 처음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불안정한 눈동자가 많이 안정되어 있는 게 보인다.
 
나도 역시 동행자가 생겨 한결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지만 이런 갓길도 없는 국도를 천방지축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녀석과 같이 가는 일이 운전자들에게 너무 방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잠잘 때도 그렇고, 국경을 넘을 때도 문제가 될 것 같아 여러 번 쫒으려고 소리를 지르며 실랑이를 했지만 15km나 쫒아왔다.

그러다 식당이 나와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 들어갔다 나오니 녀석이 안 보인다.
 
세르비아 호텔 식당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응해준 베체이 방송 카메라맨과 여자 기자.(사진=강명구)

세르비아의 개만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나를 대하는 것이 미치도록 친절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음을 날려주고 악수를 청하고 사진촬영을 요청하고, 지나가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서 환영을 해준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저만치 차를 세우고 기다리더니 초코렛바 두 개를 쥐어주며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라고 응원도 하고 식당에서는 “on the house”라고 그냥 가라고 하면서 물병과 콜라병을 덤으로 싸서 주기도 한다.

호텔에서는 대단한 일을 한다며 10유로만 내라고 한다.
 
그날 그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두 남녀가 찾아오더니 남자는 베체이 방송 카메라맨이고 여자는 기자라고 소개를 하면서 인터뷰 좀 할 수 없냐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인터뷰를 하자고 하냐?”고 물으니 기자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안다고 농담을 하면서 내일아침 몇 시에 출발하는지 출발하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출발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다고 한다.
 
세르비아 베체이에서 노비사드로 가는 길에 보게된 어느 축구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사진=강명구)

인터뷰는 잘 됐다. 나는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톤을 하는 이유와 특히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세르비아 국민들이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노력에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하였다.

방송의 효과는 그 다음날로 바로 나타났다. 길을 달리는데 자동차 경적소리가 음악처럼 자주 들려오고, 사람들이 흔들어주는 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이런 땅,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전쟁이 벌어지고, 인종말살이 자행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위정자들은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는 광적인 애국의 열기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힘차게 군가를 부르면서 하나가 되는 경험은 민중들에게 짜릿한 모험심과 영웅심을 유발시킨다.

적폐 청산할 게 많은 나라일수록 전쟁은 모든 적폐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것 같은 야릿한 유혹을 한다.

공동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하찮은 논쟁으로 분열되었던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마약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의 상처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치유가 안 되고 상처가 터지고 덧나는 경우가 많다.(사진=강명구)

그러나 그 대가는 처절하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치유가 안 되고 오히려 상처가 곯아 터지고 덧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하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럽연방에 포함되기를 희망하며 제일 먼저 독립을 선언한다.

1991년 6월 25일 세르비아계 장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를 침공하며 유고내전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크로아티아로 침공하고 서로 간에 공방전이 벌어진다. 1992년 4월 6일에는 보스니아 시민들의 집회에 무차별 총기난사를 벌이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총 3년 8개월간의 내전 끝에 휴전을 한다. 3년 8개월의 전쟁은 30년이 다 되어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발칸은 중세의 한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적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1389년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1878년 러시아, 오스만 전쟁까지 500년간 발칸은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이 아니었다.

오스만은 슬라브인에게 이슬람교 개종을 강요했다. 오스만의 지배로 발칸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유리된 채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근 100년 간 이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발칸반도는 지리적으로 유럽이었지만 오랫동안 유럽이 아니었다.

발칸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서유럽과 이슬람 세력 사이에서 억눌리고 왜곡된 역사를 보냈다.

30년 종교전쟁,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사회주의 독제를 견디고도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야 이제야 방향을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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